요엘 2장 12-1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엘 2:12-14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선지자 요엘이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부르며,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고 한 구절이다. 겉모양보다 마음의 회개를 강조하는 대표 구절로, 재의 수요일과 회개 설교에서 자주 읽힌다.
문맥
요엘서는 메뚜기 떼 재앙(1장)을 계기로 "여호와의 날"이 다가온다고 경고하는 예언서다. 기록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포로기(바빌론에 끌려간 시기) 이전으로 보는 견해와 이후로 보는 견해가 나뉜다.
2장 1-11절은 군대처럼 몰려오는 재앙을 묘사한다. 바로 뒤 12-14절에서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며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게 돌아오라고 부른다. 이어지는 15-17절은 금식일을 정해 온 백성을 모으라는 공동 회개 요청이다. 18절부터는 하나님이 땅을 불쌍히 여겨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으로 바뀐다. 이 장 뒷부분은 오순절에 베드로가 한 설교(사도행전 2장 16-21절)에 인용된다.
14절의 "소제와 전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물과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물이다. 1장 9절은 재앙 때문에 이 제물들이 성전에서 끊어졌다고 말한다. 따라서 14절은 복이 회복되면 예배도 다시 드릴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해석
- 마음의 회개로 보는 읽기: 옷을 찢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슬픔과 뉘우침을 나타내는 관습이었다. 많은 해석자는 "마음을 찢고"를 겉모양만의 의식이 아니라 속에서 나오는 회개를 요구하는 말로 읽는다. 다만 12절이 금식과 울음을 함께 명하므로, 의식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의식이 마음과 함께 가야 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부름으로 보는 읽기: 13절 뒷부분은 출애굽기 34:6의 고백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요나 4:2에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 때문에 이 구절은 회개의 근거를 사람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애(히브리어 '헤세드', 변함없는 사랑)에 두는 말로 읽힌다.
- "누가 알겠느냐"에 주목하는 읽기: 14절은 용서와 회복을 확정된 결과처럼 말하지 않고 소망의 여지로 남긴다. 니느웨 왕의 말(요나 3:9)과 비슷한 어조다. 많은 해석자는 이를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겸손한 태도로 본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하나님이 "뜻을 돌이킨다"(히브리어 '나함')는 표현이 하나님의 변하지 않으심(말라기 3:6)과 어떻게 어울리는지는 오래 논의되어 왔다.
- 칼빈주의 전통은 흔히 이를 사람이 알아듣도록 하나님을 사람의 감정에 빗대어 말한 표현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계획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쪽은 사람의 응답에 실제로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이 구절이 회개를 촉구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또 이 구절을 "회개하면 반드시 재앙이 그친다"는 공식으로 읽는 것은 14절의 조심스러운 어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는 표현은 회개를 주제로 한 설교와 금식 기도회에서 자주 인용된다. 교회력을 따르는 교회에서는 공동 성서정과(Revised Common Lectionary)에 따라 요엘 2:1-2, 12-17을 재의 수요일 구약 본문으로 읽는다. 그래서 사순절을 시작하는 예배에서 이 구절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함께 읽을 구절
함께 보기 7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