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4장 4-1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룻기 4:4-10
4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
5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찌니라
6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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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가 성문에서 장로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더 가까운 친족에게서 기업 무를 권리를 넘겨받아 나오미의 밭과 룻을 사들이는 장면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땅 무르기와 대 잇기 관습을 보여 주며,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구속자의 예표로 읽는 본문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룻기 3장에서 룻은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달라고 청한다. 보아스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며 그 사람의 뜻을 먼저 묻겠다고 약속한다. 4장 1-2절에서 보아스는 성문에 앉아 그 친족과 성읍 장로 열 명을 불러 모은다. 이 구절에서 보아스는 그 친족에게 나오미의 밭을 무를 것인지 묻는다. 친족은 처음에 무르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밭을 사면 죽은 말론의 아내 룻도 함께 맡아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자기 기업에 손해가 날까 하여 권리를 포기한다. 그는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넘김으로써 거래를 확정한다. 보아스는 엘리멜렉 집안의 재산을 사고 룻을 아내로 맞는 일에 장로들과 백성이 증인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무른다'는 말은 값을 치르고 친족의 땅이나 사람을 되찾아 준다는 뜻이다. '기업(基業)'은 대대로 물려받는 땅과 재산을 가리킨다.
해석
- 법·관습으로 보는 읽기: 이 장면은 친족이 팔린 땅을 되사 주는 무름 제도(레위기 25:25)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는 계대결혼(신명기 25:5-10)이 함께 얽힌 사례로 읽힌다. 두 제도가 이 본문에서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다. 친족이 물러선 이유(6절)는 흔히 이렇게 설명된다. 값을 치르고 산 땅이 장차 룻에게서 날 아들, 곧 말론의 이름을 잇는 자식에게 돌아가므로 자기 재산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 언약과 구속사의 읽기: 4장 끝의 족보는 이 결혼에서 다윗으로 이어지는 혈통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많은 해석자는 이 장면을 모압 여인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읽고, 마태복음 1:5 족보와 연결한다.
- 모형론(예표론)의 읽기: 구약의 인물이나 사건이 장차 올 실체를 미리 보여 준다고 보는 해석 방식이다. 이 읽기에서는 값을 치르고 기업과 신부를 되찾는 보아스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미리 보여 주는 인물로 본다. 이름 없는 친족은 구원하지 못하는 율법에 빗대어 설명되기도 한다.
논쟁과 쟁점
교단 사이에 뚜렷한 교리 논쟁이 있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가 거론된다.
- 신 벗는 의식의 차이: 신명기 25장에서는 의무를 거절한 형제가 과부에게 신을 벗김당하고 수치를 당한다. 여기서는 친족이 스스로 신을 벗는다. 7절은 이것을 거래를 확정하는 관습으로 설명한다.
- 5절의 본문 문제: 히브리어 본문에는 표기된 형태와 읽도록 지시된 형태가 다른 곳(케티브와 케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차이 때문에 룻을 사는 주체를 친족으로 볼지 보아스로 볼지에 대한 논의가 있고, 번역본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 모형론의 범위: 보아스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리스도와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설교에 대해서는, 본문의 역사적 의미를 지나치게 우의(寓意)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는 '기업 무를 자'라는 표현을 그리스도의 구속과 연결하는 본문으로 자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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