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33-3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11:33-36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9~11장의 이스라엘과 이방인 구원 논의를 마치며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주권을 찬양한 송영이다. 하나님 중심 신앙을 말할 때와 예정론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의 교회에 보낸 편지다. 9~11장에서 바울은 많은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현실을 두고,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했는지를 묻는다. 그는 이스라엘의 걸려 넘어짐이 이방인에게 구원이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로마서 11:32)이라는 말로 논의를 맺는다. 이 구절은 그 결론 바로 뒤에 나오는 송영(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이다.
34절은 이사야 40:13의 표현을 가져온 것이다. 35절은 욥기 41:11과 가깝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두 절 모두 인간이 하나님의 조언자나 하나님께 갚음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뜻을 담는다. 36절은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세 표현으로 끝난다.
해석
- 개혁주의의 읽기: 장 칼뱅을 비롯한 개혁주의 전통은 이 송영을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의 신비 앞에서 인간이 따지기를 멈추고 경배로 응답하는 장면으로 읽는다. 36절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고백의 근거로 자주 쓰인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의 근거 구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아르미니우스주의·웨슬리 전통의 읽기: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신학 쪽에서는 바로 앞 32절의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강조한다. 이 송영이 찬양하는 대상은 일부를 버리는 작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긍휼의 계획이라고 본다. 9~11장을 개인의 예정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이라는 구원 역사의 차원에서 읽는 경향도 있다.
- 삼위일체적 읽기: 아우구스티누스 등 일부 교부는 36절의 세 표현을 성부·성자·성령에 대응시켜 삼위일체를 암시하는 구절로 읽었다. 현대 주석가들은 대체로 이 구절을 창조주이자 만물의 목적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로 본다.
논쟁과 쟁점
- 번역: 33절 첫머리는 헬라어 구문상 "부요함과 지혜와 지식의 깊음"으로 세 가지를 나란히 읽을 수도 있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으로 읽을 수도 있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뒤쪽으로 옮겼고, 일부 현대 번역은 앞쪽을 따른다.
- 예정론 논쟁에서의 사용: 예정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측량치 못할" 판단이라는 표현은 선택 교리에 대한 반론에 답하는 근거로 인용되곤 한다. 다른 쪽에서는 신비를 내세워 물음을 닫아서는 안 되며, 문맥의 중심은 긍휼이라고 지적한다.
- 문맥을 떠난 인용: 33절은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 앞에서 위로의 말로 자주 인용된다. 이에 대해 본래 구원 역사 속 하나님의 계획을 찬양한 말이라는 점을 짚는 해설이 있다. 반면 하나님의 길을 다 알 수 없다는 고백이 성경 여러 곳에 있으므로 이런 적용도 무리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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