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인물
토마스 아퀴나스(1225년경~1274년)는 이탈리아 출신의 도미니코회 수도사이자 중세 스콜라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이다. 『신학대전』을 썼고, 천주교에서는 성인이자 교회학자로 공경받는다.
생애
1225년경 시칠리아 왕국의 로카세카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로카세카는 오늘날 이탈리아 남부에 있다. 어려서 몬테카시노 수도원에서 교육받았고, 나폴리에서 공부하던 중 도미니코회에 들어갔다. 도미니코회는 재산을 갖지 않고 설교와 학문에 힘쓰는 탁발수도회이다. 가족이 그의 입회를 반대해 한동안 그를 붙잡아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파리와 쾰른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게 배웠고, 파리 대학 등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1273년 말 저술을 멈추었다. 이듬해 리옹 공의회로 가던 길에 포사노바 수도원에서 숨졌다. 1323년 천주교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사역과 업적
아퀴나스는 스콜라 신학을 대표한다. 스콜라 신학은 중세 대학에서 질문과 반론, 답변의 방식으로 신학을 체계화한 학풍이다. 그는 당시 새로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결합했다. 신앙과 이성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은혜는 자연을 없애지 않고 완성한다"는 원리로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는 미완성으로 남은 『신학대전』과 『대이교도대전』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으로 논증하는 '다섯 가지 길'을 제시했다. 화체설(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본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과 일곱 성사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청빈·정결·순명을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계명과 구별하여, 더 높은 완전함으로 이끄는 '복음적 권고'로 설명한 것도 그의 신학에 속한다.
1567년 천주교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1879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아에테르니 파트리스」 이후에는 천주교 신학과 철학의 기준이 되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천주교에서는 그의 신학이 사제 양성과 신학 교육의 중요한 바탕이다. 개신교에서는 신학대학원의 교회사와 조직신학 과목에서 중세 신학의 대표자로 다룬다. 기독교 신앙을 이성적으로 변호하는 변증 분야에서는 '다섯 가지 길'이 자주 소개된다. 개혁주의 진영의 일반 은총과 자연법 논의에서도 참고된다.
평가
천주교는 그를 '천사적 박사'라 부르며 가장 권위 있는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중한다.
개신교의 평가는 엇갈린다. 마르틴 루터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기댄 스콜라 신학을 비판했다. 개신교 신학자들은 아퀴나스의 칭의 이해도 문제로 지적한다. 그는 은혜가 사람 안에 주입되어 사람을 의롭게 변화시킨다고 보았고 공로 개념을 받아들였는데,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선언된다는 개신교 이해와 다르다는 것이다. 수도 서원을 더 높은 길로 본 복음적 권고 이해도 종교개혁 진영에서 비판받았다. 칼 바르트는 천주교 신학의 '존재의 유비' 개념을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종교개혁 이후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그의 방법과 개념을 상당 부분 활용했다는 연구가 있다. 최근에는 일부 개신교 학자들이 그를 공통의 신학 유산으로 재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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