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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쿨만(1902~1999)은 프랑스 알자스 출신의 루터교 신약학자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역사 속에서 단계적으로 펼쳐진다는 '구속사' 신학과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1902년 알자스 지방의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당시 독일 제국령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령이 되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에서 공부했고, 1930년대에 같은 대학에서 가르쳤다. 1938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로 옮겼으며, 1940년대 말부터는 파리에서도 함께 가르쳤다. 1999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구속사 신학: 대표작 『그리스도와 시간』(1946)에서 구속사(救贖史,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이 역사 속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관점)를 체계화했다. 그는 성경의 시간관을 그리스 사상의 순환적 시간과 구별되는 직선적 시간으로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역사의 중심으로 놓았다.
  • '이미와 아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 승리는 '이미' 이루어졌지만, 완성은 재림 때까지 '아직'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일(결정적 전투)과 종전일(최종 승리)에 빗댄 비유가 유명하다. 이 틀은 종말론과 하나님 나라 이해에 큰 영향을 주었다.
  • 기타 연구: 『신약의 기독론』(1957)에서 신약에 나타난 예수의 칭호들을 연구했다. 『베드로』(1952)도 썼다. 『신약의 세례론』(1948)에서는 칼 바르트가 유아세례를 비판한 데 맞서 유아세례를 옹호했다. 또 신약은 영혼 불멸보다 몸의 부활을 가르친다고 주장해 논쟁을 낳았다.
  • 교회 일치 활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개신교 측 옵서버로 참석했다. 『다양성을 통한 일치』(1986) 등을 통해 천주교와 개신교의 대화를 주장했으며,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요 학자로 꼽힌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그리스도와 시간』, 『신약의 기독론』 등 주요 저서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구속사 개념과 '이미와 아직'이라는 표현은 신학교 강의와 설교에서 널리 쓰여 왔다. 다만 한국 개혁주의 진영의 구속사적 설교와 성경신학은 쿨만보다 게할더스 보스, 헤르만 리델보스 같은 네덜란드·미국 개혁파 학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평가

쿨만은 20세기 신약학에서 구속사 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된다. 그는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성경의 신화적 표현을 실존적 의미로 풀어 읽는 해석)에 맞서 구원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반면 불트만 쪽 학자들은 그가 신앙을 역사 도식에 지나치게 묶어 둔다고 비판했다. 언어학자이자 성서학자인 제임스 바는 『성경의 시간 어휘』(1962)에서 쿨만이 낱말 연구로 '히브리적 시간관'을 끌어낸 방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영혼 불멸 비판 역시 전통적 내세관과 충돌한다는 반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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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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