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아 요새
성경 · 지명
안토니아 요새는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 북서쪽 모퉁이에 세운 요새다. 사도행전 21~23장에서 천부장이 바울을 데려간 "영내"가 이곳으로 여겨진다.
성경에 나오는 곳
"안토니아"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행전 21~23장에서 로마 천부장(천 명을 거느리는 지휘관)이 바울을 데려간 "영내"가 이 요새로 여겨진다.
- 사도행전 21:27~36에서 성전에 있던 바울이 유대인 무리에게 붙잡혀 맞는다. 소식을 들은 천부장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내려와 바울을 결박하고 영내로 데려가게 한다.
- 사도행전 21:35~40에서 바울은 영내로 올라가는 "층대"(계단) 위에 서서 히브리 말로 무리에게 말한다. 22장의 변론이 이때 한 것이다.
- 사도행전 22:24~29에서 천부장은 바울을 영내에서 채찍질하며 심문하려 한다.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고 밝히자 심문이 멈춘다.
- 사도행전 23:10, 16에서 공회에서 다툼이 일자 군인들이 바울을 다시 영내로 데려간다. 이후 바울의 생질(누이의 아들)이 영내로 들어와 암살 음모를 알린다.
천부장의 이름은 사도행전 23:26에 글라우디오 루시아로 나온다. 바울은 이곳에서 가이사랴로 호송된다(사도행전 23:23~33).
배경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본래 하스몬 왕조의 성채가 있었다. 헤롯 대왕이 이를 크게 고쳐 짓고, 후원자였던 로마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아"라고 불렀다. 요세푸스는 이 요새가 성전 바깥뜰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었다고 쓴다. 또 로마 수비대가 이곳에 머물며 명절 때 성전에 모인 군중을 감시했다고 기록한다. 이 요새는 70년 예루살렘 포위전 때 로마군에게 무너졌다.
사도행전에 "영내"로 옮겨진 헬라어 낱말(파렘볼레)은 군대의 진영이나 병영을 뜻한다. 정확한 규모와 경계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예루살렘 성전 바로 곁에 있던 이 요새는 로마 제국이 유대 땅을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이 동족에게 복음을 증언하다가 로마의 보호와 구금을 함께 받게 되는 전환점의 무대가 된다. 바울은 이 구금 상태로 가이사랴를 거쳐 로마까지 가게 된다.
해석과 논점
오랜 전통은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한 "관정" 또는 "브라이도리온"(마태복음 27:27, 마가복음 15:16)과, "돌을 깐 뜰" 가바다(요한복음 19:13)를 안토니아 요새로 보아 왔다. 이 이해에 따라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도 이 요새 터 부근에서 시작한다.
반면 많은 학자는 총독이 예루살렘에 머물 때 서쪽 언덕의 헤롯 궁전을 썼다고 보고, 재판 장소를 그곳으로 본다. 오늘날 시온 수녀원 아래에서 보여 주는 돌 포장 바닥과 '에케 호모' 아치도 후대(2세기)의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예수의 재판 장소가 안토니아 요새였다는 것은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전승과 해석의 영역이다.
한국 교회에서
예루살렘 성지순례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출발점 부근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사도행전 22장 바울의 변론을 다루는 설교에서 그 배경 장소로 언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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