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교리·신학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1530년 신성 로마 제국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루터파 제후들이 황제 카를 5세에게 제출한 신앙고백으로, 루터교회의 기본 신앙 표준이다.
정의와 뜻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종교개혁 시기 루터파가 자신들의 가르침을 공식적으로 정리한 문서이다. 라틴어 이름을 따 '콘페시오 아우구스타나'라고도 한다. 신앙고백(교회가 믿는 내용을 공적으로 밝힌 글)으로서는 개신교 최초의 공식 문서로 꼽힌다. 루터교회는 이 문서를 성경 다음가는 신앙 표준으로 삼는다.
전체 28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21개 조항은 하나님, 원죄, 그리스도, 칭의, 교회, 성례 등의 교리를 다룬다. 뒤의 7개 조항은 당시 교회 관행 가운데 루터파가 바로잡았다고 본 문제를 다룬다. 성찬 때 평신도에게 잔을 주지 않던 관행, 사제 독신 제도, 수도 서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1530년 황제 카를 5세는 제국 안의 종교 갈등을 정리하려고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국의회를 열었다. 루터파 제후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해명하는 문서를 내야 했다. 마르틴 루터는 제국의 추방령을 받은 상태여서 의회에 나갈 수 없었고, 근처 코부르크 성에 머물렀다. 그래서 루터의 동료 필리프 멜란히톤이 문서 작성을 주도하였다. 문서는 1530년 6월 25일 독일어로 낭독되었고 라틴어본과 함께 제출되었다.
멜란히톤은 천주교와의 차이를 되도록 줄여 표현하고, 고대 교회의 전통과 이어져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핵심 주장은 분명하게 담았다. 제4조는 사람이 자기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으로 은혜를 입어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고백하며, 근거로 로마서 3장과 4장을 든다. 제7조는 교회를 복음이 순수하게 가르쳐지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의 모임으로 정의한다.
황제 측 신학자들은 이 문서를 반박하는 글을 냈다. 이에 멜란히톤은 1531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변증』을 써서 다시 응답하였다. 1540년에는 멜란히톤이 성찬 조항(제10조) 등의 표현을 고친 '변경판'을 내놓았다. 장 칼뱅도 이 변경판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터교회는 대체로 1530년 원본을 표준으로 삼는다. 이 문서는 1580년 루터교회의 신앙고백 모음집인 『일치서』에 실렸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이 신앙고백을 따르는 영방(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에 법적 지위를 인정하였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루터교: 기독교한국루터회는 이 문서를 『일치서』의 다른 문서들과 함께 공식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인다. 교리 교육과 목회자 양성의 기준으로 쓴다.
장로교·개혁교회: 장로교 교단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표준 문서로 삼는다. 일부 교단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함께 쓴다. 이들 교단에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공식 문서가 아니며, 신학교 교회사와 신조학(신앙고백을 연구하는 분야) 과목에서 개신교 신앙고백의 출발점으로 배운다. 칭의 교리에서는 루터교와 뜻을 같이한다. 그러나 제10조가 말하는 성찬 속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임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두고는 견해가 갈린다. 이 차이는 성찬 논쟁의 주요 쟁점이다.
성공회·감리교: 성공회의 39개 신조 가운데 일부 조항은 이 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39개 신조는 다시 감리교 신조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대한성공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교리 전통에도 간접적인 흔적이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한국 교회에서는 95개조 반박문과 함께 종교개혁을 설명하는 대표 문서로 소개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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