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와 마리아
인물 · 성경 인물 · 같은 말: 마르다, 베다니의 마리아
마르다와 마리아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베다니의 자매로, 나사로의 누이이다. 예수를 집에 맞아 대접한 일, 나사로가 살아난 일, 마리아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일로 알려져 있다.
성경의 기록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의 누이이다. 세 남매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에 살았다(요한복음 11:1, 18). 요한복음은 예수가 이 남매를 사랑했다고 적는다(요한복음 11:5).
- 예수를 맞아들임(누가복음 10:38-42): 마르다는 예수를 대접하느라 분주했고,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 마르다가 동생이 돕지 않는다고 하자 예수는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답했다. 누가복음은 마을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 나사로가 살아남(요한복음 11:1-44): 예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했다(11:25).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다(11:27).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울었다(11:32).
- 베다니의 향유(요한복음 12:1-8): 유월절 엿새 전 잔치에서 마르다는 시중을 들었다. 마리아는 값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았다. 가룟 유다가 이를 낭비라고 나무라자, 예수는 자기 장례를 위한 일이라고 답했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랍비의 발치에 앉는 것은 배우는 제자의 자세였다(사도행전 22:3 참고). 그래서 누가복음 10장은 여성이 말씀을 배우는 제자로 받아들여진 장면으로도 읽힌다. 마르다의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마태복음 16:16)과 자주 나란히 언급된다. 마리아의 향유는 예수의 죽음과 장례를 미리 가리키는 사건으로 놓인다.
해석과 논점
- 섬김과 말씀: 서방 교회는 오래전부터 마리아를 관상(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함)의 삶, 마르다를 활동하는 삶의 상징으로 읽었다. 개신교 설교는 대체로 말씀을 듣는 일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다만 예수가 꾸짖은 것은 섬김 자체가 아니라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음이라고 보는 해석이 많다.
- 다른 기름부음 기사: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에도 베다니에서 한 여인이 향유를 부은 일이 나오지만, 여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이를 요한복음 12장과 같은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나, 본문이 직접 밝히지는 않는다.
- 막달라 마리아와의 혼동: 서방 교회에서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90~604) 이후 베다니의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누가복음 7장의 '죄인인 여자'를 한 사람으로 보는 전통이 오래 이어졌다. 성경은 이들을 같은 인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대체로 세 사람을 구별한다.
- 후대 전설: 남매가 훗날 프랑스 남부로 건너갔다는 이야기는 중세 전설이며,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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