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25-2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죽어도 살겠고, 이것을 네가 믿느냐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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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가 죽은 뒤 예수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한 대목이다. 요한복음의 '나는 …이다' 선언 가운데 하나로, 기독교 장례예배에서 가장 많이 낭독되는 구절이다.
문맥
예수가 사랑하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고, 예수는 나흘 뒤에야 베다니에 도착한다. 마르다가 나와서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다고 말하자, 예수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 것이라고 답한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 다시 살 줄을 안다고 말하는데(24절), 예수는 부활이 먼 미래의 사건만이 아니라 지금 자신 안에 있다고 대답한다. 26절 끝에서 예수는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묻고, 마르다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한다(27절). 이어 예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낸다.
해석
- 두 마디의 짝: 25절의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는 육신이 죽어도 부활하여 살게 된다는 뜻으로, 26절의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는 믿는 사람이 지금 받은 생명이 죽음으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많다. 앞의 것은 미래의 부활, 뒤의 것은 현재의 영생에 초점이 있다.
- 실현된 종말론: 요한복음은 마지막 날의 일을 지금 이미 시작된 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5:24-25). 이 구절이 그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미래의 부활도 분명히 말한다는 점(6:40)이 함께 지적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언젠가 다시 죽을 몸으로 돌아온 '소생'이었고, 예수의 부활과 신자의 마지막 부활은 다시 죽지 않는 몸으로 사는 것이라는 구별이 흔히 설명된다(고린도전서 15:42-44). 이 구분은 죽음 직후의 상태와 마지막 부활 사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종말론의 물음과도 이어진다. 대부분의 교단은 신자가 죽은 뒤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가 마지막 날 몸이 부활한다고 가르친다.
한국 교회에서
장례예배와 입관·하관 예배, 추도예배에서 가장 많이 낭독되는 구절이며, 묘비와 부고에도 자주 새겨진다. 부활절 설교 본문으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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