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우스 1세
인물 · 같은 말: 그레고리오 1세
그레고리우스 1세(540년경~604년)는 590년부터 604년까지 재임한 로마 주교(교황)이다. 서방 교회의 대표적 교부로 꼽히며, '대(大) 그레고리우스'라고도 부른다.
생애
로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로마시의 행정 책임자인 시장(장관)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공직을 내려놓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집안 저택을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바꾸어 수도사가 되었다. 교황 펠라기우스 2세는 그를 콘스탄티노폴리스(오늘날의 이스탄불)에 교황 대사로 보냈고, 그는 그곳에서 몇 해 동안 머물렀다. 590년 로마에 역병이 돌아 펠라기우스 2세가 죽자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604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행정과 구제: 롬바르드족의 침입과 기근이 이어지던 시기에 교회 재산으로 곡물을 나누어 로마 시민을 먹였다. 침입자와 직접 협상하기도 하여, 교황이 세속 행정까지 맡게 되는 흐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선교: 596년 수도사 아우구스티누스(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 일행을 잉글랜드 앵글로색슨족에게 보냈다. 이 선교는 잉글랜드 교회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이 아우구스티누스는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른 인물이다.
- 저술: 대표작으로 욥기를 풀이한 『욥기 도덕론』, 목회자의 자격과 설교 방법을 다룬 『사목 규칙』(목회 규칙), 이탈리아 성인들의 이야기를 모은 『대화집』, 복음서와 에스겔에 대한 설교집이 있다.
- 칭호: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들의 종'이라 불렀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세계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쓰는 것에는 반대했다.
- 교만을 뿌리로 하는 일곱 가지 죄의 목록을 정리하여 중세 윤리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천주교에서는 '그레고리오 1세' 또는 '대 그레고리오'로 부르며 성인으로 공경한다. 13세기 말 암브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서방의 4대 교회 학자로 꼽혔다. 정교회도 그를 '대화자 그레고리우스'라는 이름으로 성인으로 기린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주로 교회사와 예배학 수업에서 그를 다룬다. 그의 이름이 붙은 '그레고리오 성가'는 서양 교회음악사의 출발점으로 소개된다. 다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 성가가 그의 직접 작품이라기보다 후대에 정리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사목 규칙』은 목회자론의 고전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참고로 오늘날 쓰는 그레고리력(양력)은 16세기의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한 것이다. 그레고리우스 1세와는 관계가 없다.
평가
천주교는 그를 중세 교회의 기틀을 놓은 교황이자 모범적 목자로 높이 평가한다. 개신교 안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대화집』 등을 통해 연옥 사상, 죽은 자를 위한 미사, 성인과 유물 공경이 서방 교회에 널리 퍼졌다는 점이 비판받는다. 한편 그가 보편적 우두머리 주교라는 칭호를 거부한 사실을 들어, 장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은 후대 교황권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목회적 돌봄과 설교를 강조한 점은 교단을 가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언급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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