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실망
역사
대실망(Great Disappointment)은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믿었던 미국 밀러 운동 신자들이, 그날이 지나도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겪은 집단적 실망을 가리킨다.
배경
19세기 전반 미국은 제2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으로 부흥 집회와 종말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시기 뉴욕주의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는 성경, 특히 다니엘서의 예언을 연구했다. 그는 다니엘 8:14의 "이천삼백 주야"를 2,300년으로 읽었다. 예언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는 해석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을 예루살렘 재건 명령이 내려졌다고 본 기원전 457년으로 잡았다. 이 계산으로 밀러는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때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고, 그 시기를 1843년 무렵으로 추정했다. 그는 재림이 천년왕국보다 먼저 온다고 믿었다.
전개
- 1831년 무렵: 밀러가 공개 설교를 시작했다.
- 1839년 무렵부터: 보스턴의 목사 조슈아 하임스(Joshua V. Himes)가 신문 발행과 천막 집회를 맡으면서 운동이 여러 교단으로 퍼졌다. 이들을 흔히 '밀러파'라고 부른다.
- 1843~1844년: 밀러는 재림 시기를 1843년 3월 21일부터 1844년 3월 21일 사이로 제시했다. 이 기간이 지나도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 1844년 8월: 뉴햄프셔주 엑서터의 천막 집회에서 새뮤얼 스노(Samuel S. Snow)가 새 날짜를 내놓았다. 구약의 속죄일(일곱째 달 열째 날)에 해당하는 그해 10월 22일이 재림의 날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른바 '일곱째 달 운동'이 일어났고, 밀러도 10월 초에 이 날짜를 받아들였다.
- 1844년 10월 22일: 많은 신자가 모여 재림을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 신자가 생업을 정리하거나 농작물을 거두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신자 수는 수만 명에서 10만 명 안팎까지 자료마다 추산이 다르다.
결과와 영향
실망 뒤에 많은 신자가 운동을 떠났고, 밀러파는 사회의 조롱을 받았다. 밀러는 날짜 계산이 틀렸음을 인정했지만 재림이 가깝다는 믿음은 지키다가 1849년에 세상을 떠났다.
남은 신자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 날짜 계산을 멈춘 흐름: 1845년 올버니 회의를 거쳐 정리되었고, 여기서 재림 그리스도교회(Advent Christian Church) 등이 생겨났다.
- 1844년을 다르게 해석한 흐름: 하이럼 에드슨(Hiram Edson) 등은 1844년 10월 22일을 재림의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들어가 새 사역을 시작한 날로 보았다. 이 해석에 조지프 베이츠의 안식일 준수 주장이 더해졌고, 제임스 화이트와 엘렌 G. 화이트 등이 중심이 되어 1863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공식 조직되었다.
- 그 밖의 영향: 여호와의 증인의 뿌리가 된 찰스 테이즈 러셀도 재림 운동 설교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
대다수 개신교 교단과 신학자들은 대실망을 재림 날짜를 정한 데서 비롯된 사건으로 본다. 날짜를 정하는 일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마가복음 13장 32-33절과 사도행전 1장 7절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실망은 시한부 종말론의 대표적 역사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다르게 본다. 이 교회는 연대 계산 자체는 옳았고 일어날 사건, 곧 지상 재림이라는 해석이 틀렸던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1844년을 하늘 성소에서 '조사심판'이 시작된 해로 가르친다. 다른 개신교 일부에서는 이 교리가 성경적 근거가 약하고 예언 실패를 사후에 설명한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재림교회는 이 교리가 다니엘서와 히브리서의 하늘 성소 가르침에 근거한다고 반론한다.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한 다미선교회 등의 시한부 종말론 소동이 벌어졌을 때, 대실망이 비교 사례로 거듭 언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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