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밀러
인물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는 다니엘서 예언을 계산해 1843~1844년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전한 미국 침례교 평신도 설교자이다. 19세기 재림운동과 '대실망' 사건의 중심인물이다.
생애
윌리엄 밀러는 178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에서 태어났고, 뉴욕주 로햄턴 일대에서 농부로 자랐다. 청년기에는 이신론(理神論)에 기울었다. 이신론은 신이 세상을 창조한 뒤에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다. 1812년 미·영 전쟁에는 장교로 참전했다. 1816년 무렵 회심한 뒤 침례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2년가량 혼자서 성경을 깊이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9년 로햄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밀러는 다니엘 8:14의 "이천삼백 주야"를 해석해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계산했다. 이때 쓴 방식은 예언 속의 하루를 한 해로 읽는 이른바 연일(年日) 원칙이다. 그는 에스라 7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재건 명령(기원전 457년)을 기산점으로 잡아, 1843년 무렵 그리스도가 문자 그대로 다시 오고 천년왕국이 시작된다고 결론지었다.
1831년부터 공개 강연을 했고, 1833년 침례교회로부터 설교 허가를 받았다. 당시 미국은 대각성 운동의 열기 속에 있었다. 출판인 조슈아 하임스가 신문과 대형 집회로 그의 주장을 널리 알렸고, 따르는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무리를 흔히 '밀러파' 또는 재림운동이라 부른다.
밀러가 처음 제시한 시기는 1843년 3월부터 1844년 3월 사이였다. 이 기간이 지나자 운동 안에서는 새뮤얼 스노가 내놓은 1844년 10월 22일이 널리 받아들여졌고, 밀러도 막판에 이 날짜를 받아들였다. 그날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서 큰 혼란이 일었는데, 이를 '대실망'이라 부른다. 밀러는 계산이 틀렸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으나, 재림이 가깝다는 믿음은 끝까지 지켰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대실망 이후 밀러파는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그 가운데 엘렌 화이트 등이 함께한 무리는 1844년을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들어간 해로 다시 해석했다. 이들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면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이루었다. 이 교단은 20세기 초 한국에 들어와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 안에서는 이 교단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교단마다 평가가 엇갈려 왔다. 재림교회는 자신을 종교개혁을 잇는 개신교회로 이해한다.
한국에서 밀러의 이름은 날짜를 정해 종말을 예고하는 시한부 종말론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사건 때도, 그날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뒤 밀러의 대실망이 대표적인 역사적 선례로 비교되었다.
평가
많은 교회는 밀러의 사례를 날짜 계산이 실패한 경우로 본다. 근거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한 마가복음 13:32와 사도행전 1:7이 주로 인용된다.
다른 면을 함께 짚는 평가도 있다. 그가 재림 신앙과 성경 연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는 점, 그리고 계산이 틀린 뒤 이를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재림교회는 그를 날짜 계산에는 잘못이 있었으나 재림 신앙을 일깨운 선구자로 기억한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