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2장 1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디모데후서 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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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신실하지 못할 때에도 주는 언제나 신실하시며, 자기 본성을 거스를 수 없다는 구절이다. 위로의 약속으로 자주 인용되고, 구원의 확신과 배교 경고를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교단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문맥
디모데후서는 전통적으로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을 때 제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로 전해진다. 디모데전서·디도서와 함께 묶이는 목회서신의 저자 문제는 학계에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2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혜 안에서 강해지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함께 받으라고 권한다.
11~13절은 "미쁘다 이 말이여"(믿을 만한 말이다)로 시작한다. 이 단락은 "만일 …하면"으로 시작하는 네 줄로 짜여 있어, 초대교회가 쓰던 찬송이나 신앙고백 문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는 학자가 많다. 13절은 그 마지막 줄이고, 바로 앞 12절에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미쁘다'는 '믿음직하다, 신실하다'는 뜻의 옛말이다.
해석
- 위로의 약속으로 읽기: 사람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는다. 이 읽기는 12절의 '부인'(의도적으로 저버림)과 13절의 '미쁨이 없음'(믿음이 흔들리고 약해짐)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뒤 회복된 베드로가 흔히 예로 든다.
- 경고의 연속으로 읽기: 주가 "미쁘시다"는 말은 약속뿐 아니라 경고에도 신실하시다는 뜻이라고 본다. 따라서 13절은 12절의 경고를 누그러뜨리는 말이 아니라 확인하는 말이라는 해석이다. 일부 주석가가 이 견해를 취한다.
-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진술로 읽기: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를, 하나님은 자기 성품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읽는다. 하나님의 전능과 불변성(변하지 않으심)을 설명할 때 근거 구절로 인용된다.
논쟁과 쟁점
- 구원의 확신과 견인: 장로교 등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이 말하는 성도의 견인과 연결해 읽는 경우가 많다. 성도의 견인은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끝까지 보존된다는 교리다.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 전통은 사람이 은혜에서 떨어질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13절의 위로를 12절의 경고와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한다고 본다. 침례교 안에서는 교회와 목회자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다.
- 번역: 헬라어 원문의 동사는 '믿지 않다'로도, '신실하지 않다'로도 옮길 수 있다. 개역개정은 개역한글의 "일향"을 "항상"으로 바꾸었고, 새번역은 '신실'이라는 말로 옮겼다.
- 문맥을 떠난 인용: 12절의 경고를 빼고 13절만 떼어 쓰면, 신앙생활의 태만을 정당화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시련이나 실패를 겪는 교인에게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을 전하는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미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대표기도와 설교에서 지금도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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