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솔
성경 · 지명
하솔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던 가나안의 큰 성읍이다. 여호수아의 북방 정복, 드보라 시대의 전쟁, 솔로몬의 성읍 건축과 관련해 성경에 나온다.
성경 본문과 내용
하솔은 주로 북부 가나안의 왕도(王都, 왕이 다스리던 중심 성읍)로 나온다.
- 여호수아의 북방 정복: 하솔 왕 야빈이 북쪽 여러 왕을 모아 이스라엘과 맞섰다. 여호수아는 메롬 물가에서 이들을 쳐부수었다(여호수아 11:1-9). 성경은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다고 적는다(여호수아 11:10). 이스라엘은 언덕 위에 선 다른 성읍들은 불사르지 않았고, 하솔만 불살랐다고 한다(여호수아 11:11-13). 땅을 나눌 때 하솔은 납달리 지파의 몫이 되었다(여호수아 19:36).
- 사사 시대: 사사기 4장에는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나온다. 드보라와 바락이 이들을 물리쳤다(사사기 4:2, 23-24). 이 사건은 사무엘상 12:9와 시편 83:9에서 다시 언급된다.
- 왕국 시대: 솔로몬은 하솔과 므깃도, 게셀을 건축하였다(열왕기상 9:15). 북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하솔을 점령하고 주민을 사로잡아 갔다(열왕기하 15:29).
여호수아 15장, 느헤미야 11:33, 예레미야 49:28-33에도 '하솔'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갈릴리의 하솔과 다른 곳으로 본다. 유다 남부, 베냐민 지역, 아라비아 쪽의 지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배경
하솔은 갈릴리 호수 북쪽, 훌라 골짜기 가장자리에 있었다. 이곳은 남쪽 애굽과 북쪽 다메섹·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길목이었다. 이름은 히브리어로 '울타리 친 곳, 마을'을 뜻하는 낱말과 관련된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솔은 성경 밖의 고대 문서에도 나온다. 메소포타미아의 마리 문서와 이집트의 아마르나 서신이 그 예로, 이른 시기부터 중요한 도시였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의 유적지 텔 하솔은 윗도시와 아랫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가나안 지역에서 손꼽히는 큰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이갈 야딘이 발굴했고, 1990년대부터 암논 벤토르가 발굴을 이어 갔다. 2005년에는 므깃도, 브엘세바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성서 속의 텔'로 지정되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하솔은 가나안 북부를 대표하는 강한 성읍이었다. 그래서 여호수아 11장은 그 정복을 북방 정복의 정점으로 그린다. 사사기 4장에서는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세력의 중심으로 나온다.
신약성경은 하솔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히브리서 11:32가 하솔 왕의 군대를 물리친 바락을 믿음의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해석과 논점
- 두 명의 야빈: 여호수아 11장에서 죽은 하솔 왕 야빈이 사사기 4장에 다시 나온다. 이를 두고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야빈을 하솔 왕들이 대대로 쓴 왕호(王號, 왕의 칭호)로 보는 견해, 하솔이 다시 세워져 후대 왕이 같은 이름을 썼다고 보는 견해, 두 전승이 겹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 불탄 성읍의 연대: 텔 하솔에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읍이 크게 불탄 흔적이 발견되었다. 야딘과 벤토르는 이를 이스라엘의 정복과 연결하였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이집트나 해양 민족의 공격, 또는 내부 반란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출애굽 연대를 이른 시기로 보느냐 늦은 시기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연결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 솔로몬의 성문: 하솔·므깃도·게셀에서 비슷한 구조의 성문이 나왔다. 야딘은 이를 열왕기상 9:15의 솔로몬 건축과 연결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핀켈스타인 등은 이 성문들을 더 늦은 시기, 곧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 무렵의 것으로 본다. 이 문제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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