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
성경 · 개념·용어
온유는 성경에서 힘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며 다른 사람을 부드럽게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팔복의 셋째 복과 성령의 열매에 들어 있다.
성경 본문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은 산상수훈의 팔복 가운데 셋째 복인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이다. 이 말씀은 시편 37:11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와 거의 같은 내용이다.
민수기 12:3은 모세를 두고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에서 예수는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소개한다. 서신서에서는 갈라디아서 5:23에서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 온유를 꼽는다. 이 밖에도 온유는 신자가 갖출 성품으로 거듭 나온다. 예를 들면 갈라디아서 6장 1절의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는 권면, 에베소서 4:2와 골로새서 3:12의 덕목 목록, 베드로전서 3:4의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 야고보서 1:21의 "온유함으로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으라" 등이 있다.
원어와 배경
구약의 히브리어 '아나우'는 '가난한 자', '고난받는 자'를 뜻하는 낱말과 뿌리가 같다. 그래서 억눌린 처지에서도 스스로 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뜻이 짙다. 이 때문에 민수기 12:3을 번역본에 따라 '겸손'으로 옮기기도 한다. 신약의 그리스어 '프라우스'와 그 명사형 '프라우테스'는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쉽게 성내지 않는 부드러움을 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낱말을 지나친 분노와 지나친 무감각 사이의 중용으로 다루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신약은 시편 37편이 말하는 온유한 자, 곧 악인이 형통해 보여도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이어받는다. 마태복음 21:5는 스가랴 9:9를 인용해 예루살렘 입성 때 나귀를 탄 예수를 그리는데, 여기서 쓰인 그리스어도 '프라우스'이다. 개역개정은 이 낱말을 "겸손하여"로 옮겼다. 신약에서 온유는 그리스도의 성품이자 성령이 신자 안에 맺게 하는 열매로 그려진다. 특히 잘못한 사람을 바로잡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대할 때 지녀야 할 태도로 강조된다(디모데후서 2:25).
해석과 논점
- 온유와 분노: 온유한 사람으로 소개된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 때 돌판을 깨뜨렸고, 예수는 성전 정화를 했다. 많은 해석자는 이를 근거로 온유가 감정이 없는 상태나 무기력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분노는 내려놓되 불의에는 반응하는 성품이라고 설명한다.
- "땅을 기업으로"의 뜻: 시편 37편의 약속의 땅을 그대로 이어 읽는 해석,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약속으로 보는 해석,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해석이 함께 있다.
- 모세의 자기 서술 문제: 민수기 12:3을 모세가 직접 썼다고 보는 전통적 견해가 있고, 후대에 덧붙여진 설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논의는 모세오경의 저작 문제와 이어진다.
- '길들여진 말' 비유: '프라우스'가 길들여진 짐승에 쓰였다는 데서 "온유는 통제된 힘"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다. 이는 본문 자체가 아니라 해석자들이 덧붙인 설명이며, 낱말의 뜻을 이 용례만으로 좁히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팔복과 성령의 열매를 가르칠 때 온유를 다루는 일이 많다. 주일학교에서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외우게 하는 교육도 흔하다. 설교에서는 "온유는 약함이 아니다"라는 강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성도 사이의 갈등이나 권징을 다루는 자리에서는 갈라디아서 6:1의 "온유한 심령"이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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