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랴
성경 · 지명
디베랴는 갈릴리 바다 서쪽 연안에 있던 도시로, 헤롯 안디바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세웠다. 신약에서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며,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 호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곳
디베랴는 신약 가운데 요한복음에만 세 번 나온다.
- 요한복음 6:1: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이라는 표현으로 오병이어 사건의 장소를 소개한다.
- 요한복음 6:23: 디베랴에서 온 배들이 무리가 떡을 먹은 곳 가까이에 닿았다고 적는다. 이 구절은 디베랴를 도시로 언급한다.
- 요한복음 21:1: 부활하신 예수가 "디베랴 호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장면이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많은 물고기를 잡은 일과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대화(요한복음 21장 15-17절)가 나온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디베랴 시내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없다.
배경
디베랴는 갈릴리를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주후 20년 전후에 세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름은 당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개역개정 누가복음 3:1의 '디베료')에서 왔다. 안디바는 이곳을 갈릴리 통치의 중심지로 삼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도시가 무덤 터 위에 세워졌다고 기록했다. 이 때문에 율법의 정결 규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이곳 거주를 꺼렸다고 전한다.
도시 이름은 곧 호수 이름으로도 쓰였다. 같은 호수를 구약은 긴네렛 바다(민수기 34:11)로, 누가복음은 게네사렛 호수(누가복음 5:1)로 부른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 디베랴는 유대교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세 초기에는 이곳의 학자들이 히브리어 성경의 모음 부호 체계를 정리했는데, 이 체계는 오늘날 마소라 본문의 바탕이 되었다. 현대 이스라엘의 티베리아스가 같은 자리에 있다.
해석과 논점
- 요한복음만 이 이름을 쓰는 까닭: 다른 복음서는 '갈릴리 바다'라고만 부른다. 이를 두고 요한복음이 팔레스타인 바깥 독자를 고려해 당시 로마 세계에 알려진 이름을 덧붙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요한복음이 이 이름이 널리 쓰인 시기에 기록되었음을 보여 준다는 견해도 있다.
- 예수가 디베랴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예수가 헤롯 안디바나 무덤 터의 부정함 때문에 이 도시를 일부러 피했다는 설명이 흔히 전해진다. 그러나 본문은 이유를 말하지 않으므로 이는 추론에 해당한다.
- 요한복음 21장의 장소: 순례 전통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난 곳을 디베랴 북쪽의 타브가 일대로 기념한다. 이 위치는 전승에 따른 것이며 본문이 특정 지점을 밝히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디베랴'는 주로 요한복음 21장 설교에서 "디베랴 바닷가"라는 말로 쓰인다. 이 본문은 실패한 베드로를 예수가 회복시키는 장면으로 자주 설교된다. 이스라엘 성지순례에서는 디베랴가 갈릴리 지역을 둘러보는 거점으로 흔히 일정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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