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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7편 1-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시편 137:1-6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이 시온(예루살렘)을 그리며 노래를 거절하고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탄식시이다. 이방 땅에서 신앙을 지키는 일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시편 137편은 시편 제5권(107~150편)에 속하며 표제가 없다. 칠십인역과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는 136편으로 매겨져 있다. 기원전 587년 또는 586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렸다. 이 시는 그 뒤 포로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의 탄식을 담고 있다.

1-4절에서는 "우리"가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운다. 사로잡은 자들이 "시온 노래"를 청하자, 그들은 수금(작은 현악기)을 버드나무에 걸어 두고 노래하기를 거절한다. 5-6절에서는 화자가 "나"로 바뀐다. 화자는 예루살렘을 잊으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 것이고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라고 스스로 맹세한다. 수금을 타는 손과 노래하는 혀를 걸고 하는 맹세이므로 앞의 노래 거절과 이어진다. 뒤따르는 7-9절은 에돔과 바벨론에 대한 보복을 구하는 내용이다. "울었도다"처럼 지난 일을 돌아보는 말투를 근거로, 포로 귀환 이후에 지어졌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해석

  • 역사적·공동체적 읽기: 나라와 성전을 잃은 공동체가 이방 땅에서 신앙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래로 읽는다. 이 읽기는 노래 요청을 조롱으로 보고, 거절을 거룩한 노래를 구경거리로 내주지 않겠다는 태도로 이해한다.
  • 예배에 관한 읽기: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라는 물음을 성전 없이도 예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읽는다. 포로기에 말씀과 기도 중심의 신앙생활이 자라났다는 견해와 연결하기도 한다.
  • 교회 전통의 영적 읽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강해에서 바벨론과 예루살렘을 이 세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도성으로 풀고, 성도를 이 땅의 나그네로 보았다. 이후 설교 전통에서도 하늘 본향을 그리는 노래로 읽는 방식이 널리 이어졌다.

논쟁과 쟁점

  • 번역: 5절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잊다"의 목적어가 없다. 그래서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그 재주를"을 보충해 옮겼다. 일부 학자는 이 동사를 모양이 비슷한 다른 동사로 보아 "오른손이 마르다(시들다)"로 읽으며, NRSV 등 일부 영어 번역이 이 읽기를 따른다.
  • 문맥을 떠난 인용: 1-6절은 애틋한 그리움의 노래로 자주 인용되지만, 같은 시의 7-9절, 특히 9절의 저주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처럼 원수를 향한 저주를 담은 시를 흔히 저주시라 부른다. 저주시를 어떻게 읽을지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는 정직한 고통의 기도로 보는 견해가 있고, 신약의 원수 사랑과 대비해 구약 시대의 한계로 보는 견해가 있다.
  • 예레미야의 편지와의 긴장: 예레미야 29:4-14은 포로들에게 바벨론에 정착해 그 성의 평안을 구하라고 권한다. 두 본문을 함께 읽으며, 고향을 잊지 않는 정체성과 지금 사는 곳에서의 책임을 함께 붙드는 길을 찾는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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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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