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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장 4-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2:4-5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자신의 복음 전도가 말솜씨가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설교와 성령의 역사, 이성과 믿음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인 고린도전서의 한 부분이다. 1장에서 바울은 교인들이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하며 편을 가르는 문제를 다룬다. 이어 1장 22-25절에서 유대인은 표적을,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지만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한다. 2장 1-3절에서는 처음 고린도에 갔을 때 말과 지혜의 뛰어남으로 가지 않았고, 약하고 두려워하며 떨었다고 회고한다. 4-5절은 이 회고를 마무리하는 말이다. 전도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4절), 그렇게 한 목적이 무엇인지(5절)를 밝힌다.

해석

  • 수사학 비판으로 읽기: 많은 주석가는 "지혜의 권하는 말"이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높이 평가받던 웅변술과 설득 기술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 읽기에서 바울은 청중을 말재주로 움직이는 방식을 일부러 피했다. 믿음이 전하는 사람의 능력에 기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성령의 내적 역사로 읽기: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전통의 해석자들은 대체로 "성령의 나타남"을 성령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회심하게 한 일로 이해한다. 고린도 교회가 생겨난 것 자체가 그 증거라는 설명이다.
  • 표적과 이적으로 읽기: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 쪽에서는 이 구절을 전도에 따르는 치유나 이적 같은 눈에 보이는 능력의 나타남과 연결한다. 그 근거로 로마서 15:19와 고린도후서 12:12를 함께 든다.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보는 해석자도 있다.

논쟁과 쟁점

  • 은사의 성격: "능력"을 기적적 표적으로 볼지는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논쟁과 맞닿아 있다. 교단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다.
  • 배움과 준비를 낮춰 보는가: 이 구절이 신학 공부나 설교 준비를 가볍게 여기는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바울 자신도 논증과 설득을 사용했다(사도행전 17장, 로마서)는 반론이 있다. 이 반론에 따르면 구절이 거부하는 것은 이성 자체가 아니라 복음을 사람의 지혜에 기대게 하는 태도다.
  • 사본과 번역: 4절의 "권하는(설득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표현은 사본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일부 사본에는 "사람의"라는 말이 더 들어 있다. 개역개정은 이 부분을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옮겼다.

한국 교회에서

부흥회나 성령 집회에서 성령의 능력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된다. 반대로 설교가 화려한 말재주나 청중 동원 기법에 기대는 것을 경계할 때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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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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