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장 15-1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갈라디아서 1:15-16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부르심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을 구별하시고 은혜로 불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소명, 예정, 바울의 회심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에 보낸 갈라디아서의 한 대목이다. 바울이 떠난 뒤 이 교회들에는 이방인 신자도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이 들어왔다. 바울의 사도 자격도 의심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1:12)임을 보이려고 자기 이력을 돌아본다.
13-14절에서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과거를 말한다.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태어나기 전부터 "택정"(따로 구별하여 세움)하시고 은혜로 부르셨으며, 그 아들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이어 "혈육", 곧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곧바로 찾아가지 않았다고 덧붙인다(1:17). 복음과 사도직이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해석
- 예언자 소명에 빗댄 읽기: "어머니의 태로부터"라는 표현은 예레미야와 이사야서의 '종'이 받은 부르심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주석가는 바울이 자기 경험을 구약 예언자의 소명에 빗대어 말한 것으로 읽는다.
- 개혁주의의 읽기: 장로교 등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예정을 보여 주는 예로 자주 든다. 근거는 태어나기 전의 택정과 "은혜로" 부르심이 사람의 행위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 웨슬리안·아르미니우스주의의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전통에서는 이 구절이 개인의 영원한 구원 예정보다 바울에게 맡겨진 사도 직무로의 부르심을 말한다는 데 무게를 두는 편이다.
- '회심'인가 '소명'인가: 학자들 사이에서는 바울의 다메섹 체험을 성격을 두고 논의가 이어져 왔다. 다른 종교로 옮겨 간 회심으로 볼 수도 있고, 같은 하나님에게서 새 사명을 받은 소명으로 볼 수도 있다. 스웨덴 출신 신약학자 크리스터 스텐달은 소명 쪽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쟁과 쟁점
- 번역: 헬라어 "엔 에모이"를 개역성경은 "내 속에"로 옮겼다. 이를 내면의 체험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계시를 받은 대상을 가리키는 "나에게"로 옮기는 번역도 있다.
- 사본: 15절에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명시된 사본과 없는 사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쪽이든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뜻은 같다.
- 사도행전과의 관계: 회심 직후의 행적은 갈라디아서(1:17-18)와 사도행전 9장의 서술이 다르게 읽힌다. 둘을 어떻게 맞출지가 학자들 사이에서 다뤄진다.
- 문맥을 떠난 인용: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는 결단을 강조하는 말로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문맥은 복음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지 말라는 일반 원칙으로 쓰는 것은 문맥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선교사의 소명을 다루는 설교나 임직식·파송 때의 설교에서 인용되곤 한다.
함께 읽을 구절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