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장 1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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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4장 16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고,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서로 안에 거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성품을 짧게 요약한 말로 널리 인용된다.
문맥
요한일서는 전통적으로 사도 요한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다른 견해도 있다. 이 편지의 독자는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요한일서 2:19)과,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가르침(요한일서 4:2-3) 때문에 흔들리던 교인들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참된 신앙을 가리는 기준으로 바른 고백과 서로 사랑하는 삶을 함께 제시한다.
4장 7~21절은 사랑을 주제로 한 단락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8절에 처음 나오고 16절에서 다시 나온다. 저자는 하나님이 아들을 화목제물(죄를 씻고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제물)로 보내신 일에서 그 사랑이 드러났다고 말한다(4:9-10). 16절은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라는 고백으로 앞의 논의를 정리한다. 여기서 '거하다'(머물다)는 요한의 글에 자주 나오는 말로, 하나님과 이어지는 지속적인 사귐을 뜻한다.
해석
-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진술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말을 사랑이 하나님의 여러 행동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존재 전체에 배어 있는 성품이라는 뜻으로 읽는다. 동시에 이 사랑이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신 구체적 사건으로 규정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읽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일서를 강해하며 사랑을 서신의 중심 주제로 다루었다. 『삼위일체론』에서는 성령을 사랑으로 이해하는 논의에서 이 구절을 다루며 삼위일체를 설명했다.
- 개혁주의의 읽기: 개혁교회 전통은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이자 증거로 본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 웨슬리 전통의 읽기: 감리교와 성결교가 이어받은 웨슬리 신학은 바로 뒤 17~18절의 "온전한 사랑"과 함께 이 구절을 중시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마음을 채우는 성화(거룩하게 되어 가는 과정)의 목표를 보여 주는 말씀으로 읽는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 이 구절을 뒤집어 "사랑이 곧 하나님"이라고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주석가는 원문 구조상 두 말을 서로 바꿀 수 없다고 지적한다.
- 하나님의 사랑을 거룩함·공의와 어떻게 함께 말할지가 물음이 된다. 사랑만 강조하면 죄와 심판의 문제가 흐려진다는 우려가 있다. 반대로 심판을 앞세우는 설교가 이 구절의 중심을 가린다는 지적도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안에 있다는 뜻으로 넓게 읽어 종교다원주의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앞 15절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신다고 말하므로 문맥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반론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짧고 외우기 쉬워 주일학교 암송 구절이나 교회 표어 등에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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