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네
성경 · 개념·용어
에이레네(εἰρήνη)는 '평화'를 뜻하는 그리스어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의 화해, 사람 사이의 화평, 마음의 평안을 가리킨다. 개역개정에서는 평강·평안·화평·평화 등으로 번역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곳
에이레네는 신약성경 전반에 자주 나오는 낱말이다. 개역개정은 문맥에 따라 이 낱말을 '평강', '평안', '화평', '평화'로 옮겼다. 쓰임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인사말: 바울서신은 대부분 "은혜와 평강"이라는 인사로 시작한다(로마서 1:7, 고린도전서 1:3). 부활하신 예수도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인사하였다(요한복음 20:19).
- 하나님과의 화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
- 사람 사이의 화평: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에베소서 2:14)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졌다고 말한다(에베소서 2장 14-17절).
- 마음의 평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한복음 14장 27절), "하나님의 평강이 …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7).
이 밖에 예수 탄생 때 천사들의 찬양(누가복음 2:14),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인 '화평'(갈라디아서 5:22), "평안히 가라"는 축복(마가복음 5:34)에도 이 낱말이 쓰였다.
배경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에이레네는 주로 전쟁이 없는 상태나 질서가 잡힌 안정을 뜻하였다. 그리스 신화에는 평화를 의인화한 여신 에이레네도 있다. 낱말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구약을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샬롬을 대부분 에이레네로 번역하였다. 그 결과 샬롬이 지닌 온전함, 안녕, 관계의 회복 같은 넓은 뜻이 이 낱말에 함께 실리게 되었다. 신약의 에이레네도 이 흐름 위에서 읽힌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은 메시아가 오면 평화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였다. 이사야는 메시아를 '평강의 왕'이라 부른다(이사야 9장 1-7절). 신약은 이 평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다고 선포한다. 그 평화는 먼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이고(고린도후서가 아닌 고린도후서 5장 18-20절 참조), 이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으로 넓어진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마태복음 10:34)고 하였다. 이 말은 복음이 갈등을 불러올 수 있음을 함께 보여 준다.
해석과 논점
에이레네를 어디에 무게를 두고 읽느냐는 전통에 따라 다르다.
-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쪽: 로마서 5:1을 근거로, 하나님과의 화해가 먼저이며 이것이 칭의의 결과라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 에큐메니칼 운동 쪽: 평화를 정의와 함께 묶어, 사회적·국제적 평화를 이루는 일을 교회의 과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 재세례파와 퀘이커 같은 평화교회 전통: 산상수훈과 함께 이 낱말을 읽으며 비폭력을 신앙의 실천으로 삼는다.
설교에서는 에이레네가 '묶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왔으므로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 것"이 그 본뜻이라는 설명이 종종 소개된다. 그러나 이 어원 풀이는 학계에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과는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원어보다 번역어인 '평강'과 '평안'이 더 익숙하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같은 인사와 기도 표현이 널리 쓰인다. 대한성공회의 감사성찬례에는 회중이 서로 평화를 빌어 주는 '평화의 인사' 순서가 있다. 원어인 '에이레네'는 주로 원어를 풀어 설명하는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샬롬과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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