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레셀
인물 · 성경 인물
사레셀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앗수르 왕 산헤립의 아들이다. 형제 아드람멜렉과 함께 신전에서 아버지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달아났다.
성경의 기록
사레셀은 열왕기하 19:37과 이사야 37:38, 이렇게 두 곳에 같은 사건으로 나온다. 두 본문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해 예루살렘을 위협했다가 물러간 이야기(열왕기하 18–19장, 이사야 36–37장)를 끝맺는 대목이다.
본문에 따르면 산헤립은 군대를 잃고 니느웨로 돌아갔다. 그 뒤 자기 신 니스록의 "묘"에서 경배하던 중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게 칼로 죽임을 당했다. 여기서 "묘(廟)"는 무덤이 아니라 신을 모신 사당, 곧 신전을 뜻한다. 두 사람은 아라랏 땅으로 달아났고, 왕위는 산헤립의 다른 아들 에살핫돈이 이었다. 아라랏 땅은 오늘날 튀르키예 동부와 아르메니아 일대의 옛 우라르투 지역으로 본다(아라랏산 참조).
성경은 사레셀에 대해 이 사건 말고는 아무것도 전하지 않는다. 그 뒤의 생애와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성경 안에서의 의미
이 사건은 이사야가 앞서 전한 예언, 곧 산헤립이 "자기 땅에서 칼에 죽게" 되리라는 말(열왕기하 19:7, 이사야 37:7)이 이루어진 결말로 기록되어 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와 유다의 하나님을 조롱했다. 그런 그가 자기 신을 섬기던 자리에서 아들들 손에 죽었다는 대비를 통해, 본문은 이방 신의 무력함과 여호와의 주권을 드러낸다. 신약성경은 사레셀을 언급하지 않는다.
해석과 논점
- '그 아들'이라는 말: 개역한글의 이사야 37:38에는 "그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라고 되어 있지만, 열왕기하 19:37에는 "그 아들"이라는 말이 없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의 열왕기하 본문에도 이 말이 없고, 난외의 읽기 전통에서 보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시간 간격: 본문은 귀환과 피살을 이어서 서술한다. 그러나 학자들은 산헤립의 유다 원정을 대체로 기원전 701년경으로, 그의 죽음을 기원전 681년경으로 본다. 따라서 그 사이에 약 20년의 간격이 있고, 본문이 이를 압축해 서술한 것으로 이해한다.
- 성경 밖 기록과의 대조: 바벨론 연대기에는 산헤립이 반란 중에 아들에게 살해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살핫돈의 비문에도 형제들의 반란이 언급된다. 아드람멜렉을 앗수르 문서의 왕자 아르다-물리시와 같은 인물로 보는 학설이 있으나, 사레셀에 해당하는 인물은 분명히 확인되지 않았다.
- 이름: '사레셀'은 아카드어로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이름에서 앞의 신 이름이 빠진 형태로 보는 견해가 있다.
-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 스가랴 7:2에서 벧엘 사람들이 보낸 사레셀은 페르시아 시대의 다른 사람이다. 예레미야 39장의 바벨론 방백 '네르갈사레셀'도 별개의 인물이다.
한국 교회에서
사레셀만을 따로 다루는 설교나 교회학교 공과는 드물다. 히스기야의 기도와 앗수르 군대의 패배를 다루는 설교에서, 교만한 산헤립이 맞은 최후를 설명하며 함께 언급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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