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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스웃사

성경 · 지명

베레스웃사는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던 중 궤를 붙든 웃사가 죽은 곳에 붙인 이름이다. '웃사를 깨뜨리심'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며, 사무엘하 6장과 역대상 13장에 나온다.

성경 본문

베레스웃사는 사무엘하 6:8과 역대상 13:11에 나오는 지명이다. 다윗은 바알레유다(역대상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언약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했다. 수레는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히오가 몰았다.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자 웃사가 손을 내밀어 궤를 붙들었다. 이 타작마당을 사무엘하는 '나곤의 타작마당', 역대상은 '기돈의 타작마당'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웃사를 치셨고, 그는 궤 곁에서 죽었다(사무엘하 6:6-7). 다윗은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셨으므로 분하여 그곳을 베레스웃사라 불렀다. 본문은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라고 덧붙인다.

다윗은 두려워하여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지 않았다.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두었다.

이름과 위치

'베레스'(히브리어 페레츠)는 '터짐, 깨뜨림'을 뜻한다. 본문은 이 이름을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셨다'(깨뜨리셨다)는 동사와 연결한다. 같은 어근이 바로 앞 장에서 다윗이 블레셋을 물리친 곳의 이름 바알브라심(사무엘하 5:20)에도 쓰인다. 그래서 원수를 깨뜨리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서도 깨뜨리셨다는 대조로 읽는 해석이 있다.

위치는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어딘가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확한 곳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다윗은 뒤에 이 일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역대상 15: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율법은 궤를 채에 꿰어 메도록 정한다(출애굽기 25:14). 또 성물을 메는 고핫 자손이라도 성물을 만지면 죽는다고 경고한다(민수기 4:15). 두 번째 운반에서는 레위인이 궤를 메었고, 궤는 무사히 예루살렘에 들어갔다(역대상 15:15). 새 수레가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돌려보낼 때 쓴 방법(사무엘상 6:7)과 같다는 점도 자주 지적된다.

신약은 베레스웃사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기독교 해석에서는 이 사건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간다는 가르침(히브리서 4:16)이나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섬기라는 권면과 이어 읽기도 한다.

해석과 논점

  • 웃사의 죽음: 선의로 궤를 붙든 웃사가 죽은 것이 지나치지 않느냐는 물음은 오래되었다. 많은 해석은 율법에 어긋난 운반 방식과 이를 소홀히 한 다윗과 지도자들의 책임을 강조한다. 사무엘하 6:7에서 '잘못'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성경에 한 번만 나오는 낱말이어서 정확한 뜻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 다윗의 '분함': 하나님을 향한 노여움으로 읽는 견해가 있고, 계획이 무너진 데 대한 괴로움과 당혹으로 읽는 견해가 있다.
  • 덧붙는 설명: 웃사가 오랫동안 궤를 집에 두고 지내며 궤를 가볍게 여기게 되었다는 설명이 설교에서 흔히 붙는다. 그러나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은 아니다.
  • 예배의 방식: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이 사건을 하나님이 명하신 방식대로 예배해야 한다는 '예배 규정 원리'의 예로 들기도 한다. 다른 설교자들은 형식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대하는 태도에 무게를 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 사무엘하 6장은 흔히 '새 수레'와 '어깨에 멘 궤'를 대비하는 본문으로 쓰인다. 열심이나 좋은 뜻만이 아니라 말씀에 따른 예배와 섬김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끌어내는 것이다. 오벧에돔의 집이 받은 복(사무엘하 6:11)과 함께 설교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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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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