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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뒤 광야에서 처음 머문 곳으로,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던 샘이다. 출애굽기 15장에서 모세가 나무를 던져 쓴 물을 단 물로 바꾼 사건의 무대이다.

성경 본문

마라는 출애굽기 15:22-26에 나온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백성을 이끌고 수르 광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곳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출애굽기 15:23). 백성이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며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고,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물이 달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백성을 위해 법도와 율례를 정하고 그들을 시험하셨으며,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애굽기 15:26)고 말씀하셨다. 그 뒤 백성은 샘물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엘림으로 옮겨 갔다. 민수기 33:8-9의 여정 목록에서도 비하히롯 앞을 떠나 바다를 지나 사흘 길을 간 뒤 진을 친 곳으로 다시 나온다. 이 목록에서는 그 광야를 '에담 광야'라고 부른다.

배경과 낱말 뜻

'마라'는 히브리어로 '쓰다', '쓴 것'이라는 뜻이다. 룻기 1:20에서 나오미가 "나를 마라라 부르라"고 한 말도 같은 뜻을 담고 있다. 다만 룻기의 마라는 사람의 별칭이며, 지명 마라와는 관계가 없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시나이반도 서쪽 해안 길에 있는 샘(아인 하와라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확정되지 않았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마라 사건은 출애굽 뒤 광야에서 일어난 첫 시험이자 첫 원망이다. 곧이어 나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과 함께, 광야 40년 동안 되풀이되는 '결핍, 원망, 하나님의 공급'이라는 흐름이 여기서 시작된다. 신약은 마라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고린도전서 10장 11-12절처럼 광야 세대의 경험을 교회를 위한 본보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이 사건을 읽는 틀로 쓰여 왔다. 출애굽기 15:26의 "치료하는 여호와"는 히브리어 음을 따 '여호와 라파'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이름을 다룰 때 자주 함께 소개된다.

해석과 논점

  • 나무의 의미: 본문은 나무의 종류나 물이 달게 된 방식을 설명하지 않는다. 초대교회 이래 이 나무를 십자가의 예표, 곧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로 읽는 해석이 전해진다. 개혁주의 전통의 일부 해석자는 본문이 뒷받침하지 않는 지나친 풍유적(비유적) 해석을 경계한다. 나무가 지닌 성분으로 물을 바꾸었다는 자연적 설명도 있으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다.
  • 치료의 범위: 오순절주의 계통과 신유(병 고침)를 사중복음의 하나로 고백하는 성결교 계통은 출애굽기 15:26을 육체의 신유를 약속한 말씀으로 즐겨 인용한다. 다른 교단의 해석자들은 이 구절이 순종을 조건으로 한 언약의 맥락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치료를 영적 회복까지 포함하는 넓은 뜻으로 읽기도 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는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변한다"는 표현이 삶의 고난과 회복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마라 다음에 이른 엘림과 짝을 지어 '고난 뒤의 쉼'을 설명하는 설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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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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