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림
성경 · 지명
엘림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를 떠나 진을 친 오아시스로,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다고 기록된 광야 여정의 경유지이다.
성경 기록
엘림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나온다. 홍해 도하 뒤 이스라엘 백성은 수르 광야를 사흘 동안 걸었지만 물을 찾지 못했다. 마라에서는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는데, 모세가 하나님이 가리키신 나무를 물에 던지자 물이 달게 되었다(출애굽기 15:22-26). 그 뒤 백성은 엘림에 이르렀다. 출애굽기 15:27은 그곳에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고 백성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쳤다고 기록한다.
출애굽기 16:1에 따르면 백성은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때는 애굽에서 나온 지 둘째 달 15일이었다. 신 광야에서는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이 이어진다. 광야 여정의 진 친 곳을 차례로 적은 민수기 33:9-10도 엘림의 샘물과 종려나무를 언급한다. 다만 민수기는 엘림을 떠난 뒤 먼저 홍해 가에 진을 쳤다고 적어, 출애굽기보다 경유지를 하나 더 기록하고 있다.
배경
히브리어 지명 '엘림'은 큰 나무(상수리나무·테레빈나무 따위)를 가리키는 말과 관련되며, 흔히 '나무들'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풀면 샘과 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라는 본문의 묘사와 어울린다.
엘림의 위치는 출애굽 경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으로는 시내 반도 서쪽 해안 지대의 와디(마른 골짜기) 가운데 물과 나무가 있는 곳, 예컨대 와디 가란델 일대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확정된 위치는 없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본문의 흐름에서 엘림은 물이 없고 쓴 물만 있던 고난 다음에 주어진 공급과 쉼의 장소이다. 동시에 백성이 머물러 정착할 곳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엘림을 떠나 다시 광야로 들어갔다.
신약은 엘림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바울은 광야 여정 전체를 후대 신자를 위한 본보기로 읽었다(고린도전서 10장 11-12절). 일부 설교자는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는 어린양의 모습(요한계시록 7장 9-17절)과 엘림의 샘을 연결해 설명하기도 한다.
해석과 논점
- 숫자의 상징: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를 두고 풍유적 해석, 곧 본문 뒤에 숨은 영적 의미를 찾는 해석 전통에서는 열둘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나 열두 사도로, 일흔을 일흔 장로나 예수께서 보내신 칠십 인(누가복음 10:1)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본문 자체는 이런 의미를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개신교 주석가들 가운데에는 이를 오아시스의 실제 규모를 전하는 기록으로 읽고, 상징 해석은 설명을 돕는 적용으로 구분하는 이들이 많다.
- "마라 다음에 엘림"이라는 도식: 고난 뒤에는 반드시 쉼이 온다는 일반 원리로 읽는 적용은 설교에서 흔하다. 다만 본문은 엘림 이후에도 백성이 다시 굶주림과 원망을 겪었다고 이어 간다(출애굽기 16:2-3). 이 때문에 엘림을 최종 안식이 아니라 여정 중에 주어진 섭리의 공급으로 보는 해석도 함께 제시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 설교에서는 "마라에서 엘림으로"라는 주제가 고난 뒤의 위로와 회복을 말할 때 자주 쓰인다. '엘림'이라는 이름은 쉼과 회복의 뜻을 담아 교회, 기도원, 수양관 등의 이름에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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