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의 유다
인물 · 성경 인물
갈릴리의 유다는 기원후 1세기 초 로마의 인구 조사에 맞서 봉기를 이끈 유대인이다. 사도행전 5:37에서 가말리엘이 실패한 운동의 예로 언급한다.
성경의 기록
갈릴리의 유다는 성경에 단 한 번, 사도행전 5장에 나온다.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친다는 이유로 산헤드린(유대 최고 의회)에 붙잡혀 오자, 의원들은 그들을 죽이려 한다. 이때 바리새인이자 율법 교사인 가말리엘이 신중하게 대하자고 권하며 앞서 실패한 두 운동을 예로 든다.
첫째 예는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 하던 드다이고(사도행전 5:36), 둘째 예가 갈릴리의 유다이다. 가말리엘에 따르면 유다는 "호적할 때", 곧 인구 조사가 있던 무렵에 일어나 백성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그도 망하였고 따르던 사람들은 흩어졌다(사도행전 5:37). 가말리엘은 이를 근거로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라고 말한다(사도행전 5:38-39).
성경 안에서의 의미
사도행전에서 유다는 독립된 인물로 다뤄지지 않는다. 사람의 힘으로 일어난 운동은 지도자가 사라지면 흩어진다는 가말리엘의 논리를 받쳐 주는 사례로만 쓰인다. 본문은 이를 통해 초기 교회가 박해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은 일을 대비하여 보여 준다.
해석과 논점
성경 밖의 기록.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와 『유대 전쟁사』에서 "갈릴리 사람 유다"를 언급한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유다는 로마 총독 구레뇨(퀴리니우스)가 시행한 인구 조사에 반대하여 봉기하였다. 그는 로마에 세금을 바치고 하나님 외에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요세푸스는 그가 바리새파·사두개파·에세네파와 나란히 "넷째 철학"이라 불린 흐름을 일으켰다고 적는다. 이 봉기는 흔히 기원후 6년경의 일로 알려져 있다.
열심당과의 관계. 많은 학자는 유다의 운동을 훗날 로마에 맞선 열심당의 뿌리로 본다. 다만 요세푸스가 유다를 열심당의 창시자라고 직접 부르지는 않기 때문에, 둘을 같은 집단으로 볼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연대 문제. 사도행전은 드다를 유다보다 앞선 인물처럼 언급한다. 그런데 요세푸스가 전하는 드다의 소동은 기원후 40년대 중반의 일로, 가말리엘의 연설보다 뒤이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성경의 정확성을 중시하는 쪽은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이었다고 보고, 다른 쪽은 기록 과정의 착오로 본다. 또한 누가복음 2:2의 구레뇨 호적과 사도행전 5:37의 호적이 같은 사건인지도 논의 대상이다.
다른 유다와의 구분. 열두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다대오), 예수의 형제 유다와는 다른 인물이다. 아들들이 처형되었다는 이야기 등 그의 후손에 관한 내용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른 것이며,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의 설교에서 갈릴리의 유다는 주로 가말리엘의 권고(사도행전 5:38-39)를 다룰 때 함께 언급된다. 이때 그는 "사람에게서 난 일은 무너진다"는 예로 소개된다. 교회학교나 성경공부에서는 이름이 같은 가룟 유다와 혼동하지 않도록 구분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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