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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17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사도행전 3: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줄 아노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 설교에서, 예수를 죽음에 넘긴 예루살렘 사람들과 지도자들이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다고 말한 구절이다. 무지와 죄책의 관계, 회개 촉구와의 연결, 유대인 집단 책임 문제를 다룰 때 자주 거론된다.

문맥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 곁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켰다(사도행전 3:1-10). 이 구절은 그 뒤 모여든 무리에게 솔로몬 행각에서 한 설교(3:12-26)의 한 대목이다. 베드로는 앞에서 청중이 빌라도가 놓아 주려던 예수를 거부하고 "생명의 주"를 죽였다고 강하게 고발한다(3:13-15). 17절에서는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어조를 바꾼다. 그들과 "관원들", 곧 공회의 지도자들이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다는 것이다. 18절은 그 일을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신 것으로 설명하고, 19절은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촉구로 이어진다.

해석

  • 회개로 넘어가는 다리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구절이 죄를 없던 일로 하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고발에서 회개 권면으로 넘어가는 다리라는 것이다. 몰랐기 때문에 돌이킬 길이 열려 있다는 뜻으로 읽는다. 이 읽기에서는 누가복음 23:34의 십자가 위 기도("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와 스데반의 기도를 같은 흐름으로 함께 본다.
  • 구약의 '부지중 죄'에 비춘 읽기: 민수기 15:22-31은 모르고 지은 죄와 고의로 지은 죄를 구분하고, 모르고 지은 죄에 속죄의 길을 둔다. 베드로가 이 구분을 배경으로 청중을 용서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 개혁주의의 읽기: 개혁주의 주석은 18절과 묶어 읽는다. 사람의 무지와 악행조차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예언 성취로 쓰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사도행전 2장 23절처럼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의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고 본다. 무지 자체를 죄로 인한 영적 눈멂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 웨슬리 전통의 읽기: 웨슬리 신학은 알려진 법을 의지적으로 어기는 것과 모르고 저지른 잘못을 구별해 왔다. 이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그 구분에 비추어 읽기도 한다.

논쟁과 쟁점

  • 무지가 책임을 면제하는가: 본문은 무지를 말하면서도 곧바로 회개를 요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석자는 무지가 죄책을 덜어 줄 수는 있어도 지우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도행전 17:30의 "알지 못하던 시대"와 회개 명령도 같은 구조로 읽는다.
  • 유대인 집단 책임 문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예수의 죽음을 유대인 전체의 책임으로 돌린 주장은 반유대주의로 이어졌다는 반성을 낳았다. 20세기 이후 그 반성이 커지면서, 이 구절은 베드로의 말이 저주가 아니라 동족을 향한 회개 권면이었다는 근거로 거론된다. 천주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 「우리 시대」(1965)는 그리스도의 수난 책임을 당시 모든 유대인이나 오늘날의 유대인에게 돌릴 수 없다고 밝혔다.
  • 사본 차이: 베자 사본 같은 이른바 서방 사본에는 "우리가 안다"로 되어 있고, "악을" 행하였다는 말이 덧붙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위의 악함을 분명히 하려고 필사자가 손질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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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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