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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태복음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바리새인들에게 호세아 6:6을 인용해 하나님은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며 자신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밝힌 구절이다. 은혜와 전도, 형식과 자비의 관계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마태복음 9장 9-13절은 세리 마태를 부르신 이야기다. 예수가 마태의 집에서 여러 세리와 죄인과 함께 음식을 먹자,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묻는다. 예수는 먼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답하고(마태복음 9:12), 이어 이 구절로 말을 마친다.

"가서 … 배우라"는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에게 성경을 다시 배우라고 돌려 말한 표현이다. 당시 랍비들이 제자를 가르칠 때 쓰던 말투와 비슷하다는 해석이 있다. 인용된 말씀은 호세아 6:6이다. 마태복음에서는 안식일 논쟁을 다룬 마태복음 12장 7절에 한 번 더 나온다. 여기서 "긍휼"은 불쌍히 여겨 돕는 자비를 뜻하고, "제사"는 구약 성전에서 드리던 희생제물을 가리킨다.

해석

  • 우선순위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를 제사 자체를 없애라는 말로 보지 않는다. "A가 아니라 B"라는 히브리식 표현은 흔히 "A보다 B를 더"라는 뜻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읽기에 따르면 이 구절은 예식과 정결 규정보다 사람을 향한 자비가 앞선다는 가르침이다.
  • 은혜를 강조하는 읽기: 예수가 자격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격 없는 사람을 부르러 왔다는 선언에 무게를 둔다. 구원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된다는 근거로 인용된다.
  • "의인"에 대한 읽기: 여기서 "의인"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 곧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꼬집는 말이라고 보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서 3장 10-12절처럼 참으로 의로운 사람은 없으므로 모든 사람이 부름의 대상이라는 뜻으로 넓혀 읽기도 한다.
  • 윤리적 읽기: 미가 6장 6-8절, 아모스 5장 21-23절처럼 예배 형식보다 정의와 자비를 요구하는 예언서의 흐름과 이어 읽는다. 이 읽기는 이 구절을 교회의 구제와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근거로 삼는다.

논쟁과 쟁점

  • 사본 차이: 일부 후대 사본에는 끝에 "회개시키러"(그리스어 '에이스 메타노이안')가 덧붙어 있다. 킹제임스 역본 등이 이 본문을 따른다. 학자들은 누가복음 5:32의 표현이 옮겨 온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에는 이 말이 없다.
  • "제사"라는 번역어: 한국어 독자는 "제사"를 조상 제사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 구절의 "제사"는 성전 제물을 뜻하므로 제사와 추도예배 논의의 직접 근거로 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 문맥을 떠난 인용: 이 구절을 예배나 교회 질서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근거로 쓰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또 "죄인을 부르러"를 회개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으로만 읽는 데 대해서도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은 누가복음 5:32와 마태복음 4:17의 회개 촉구를 함께 읽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교파를 가리지 않고 전도와 새신자 환영, 소외된 이웃을 향한 섬김을 다루는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교회가 형식과 체면에 치우친다는 자기반성을 할 때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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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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