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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 1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 끝에서, 할례를 자랑하는 이들과 달리 자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밝힌 구절이다. 십자가 중심의 신앙과 신자가 세상과 맺는 관계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다. 이방인 신자에게도 할례(유대 율법에 따라 남자의 몸에 행하는 언약의 표시)와 율법 준수를 요구하던 이들에 맞서 쓰였다. 6장 11절에서 바울은 "내 손으로" 쓴다고 밝히며 편지를 맺는데, 14절은 이 맺음말 한가운데 놓여 있다.

바로 앞 12~13절에서 바울은 상대편을 비판한다. 그들이 십자가 때문에 박해받지 않으려고 할례를 강요하며, 갈라디아 교인들의 육체에 할례를 행한 것을 자랑하려 한다는 것이다. 14절은 이와 대조하여 자신이 자랑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15절은 할례나 무할례가 아니라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세상"은 피조 세계 자체보다 하나님을 떠난 가치와 지위의 질서를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해석

  • 종교개혁 전통의 읽기: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 전통은 이 구절을 칭의(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심)와 연결해 읽는다. 사람의 행위나 종교적 표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근거라는 것이다. 루터교와 장로교 해석자들은 "자랑"을 하나님 앞에서 내세우는 자기 의로 보고, 십자가가 그런 자랑을 무너뜨린다고 설명한다.
  • 성화를 강조하는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 전통에서는 "세상을 대하여 못 박힘"을 세상의 욕망과 가치에서 떠나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삶으로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전통은 이것을 성화(신자가 점차 거룩해져 가는 과정)와 성결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 공동체에 주목하는 읽기: 20세기 후반 이후 이른바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따르는 학자들은 바울이 문제 삼은 자랑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정체성 표지였다고 본다. 그리고 십자가가 그 경계를 허물고 새 공동체를 세운다는 의미에 주목한다. 개혁주의 진영 등에서는 이 견해가 전통적 칭의 이해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번역상의 쟁점이 하나 있다. 개역한글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로 옮긴 부분의 원문 관계대명사는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십자가"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래서 영어 번역에서도 KJV는 "by whom", ESV는 "by which"로 서로 다르게 옮겼다.

적용 면에서는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힘"을 사회와 거리를 두라는 뜻으로 볼지가 논의된다. 대체로는 세상의 가치를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어, 사회 참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 교회에서

영국의 찬송 작가 아이작 와츠가 이 구절을 바탕으로 지은 찬송이 한국어로 「주 달려 죽은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찬송가에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찬송은 고난주간 등에 널리 불린다. 설교에서는 갈라디아서 2:20과 함께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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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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