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시우스 1세
인물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는 동서 로마 제국을 함께 다스린 마지막 황제이다. 니케아 신앙을 제국의 공인 신앙으로 정하고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소집했다.
생애
347년 로마 제국의 히스파니아 지방에서 군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로마 황제 발렌스가 고트족에게 패해 전사했다. 그 뒤 서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379년 그를 동방 황제로 세웠다. 382년에는 고트족과 조약을 맺어 이들을 제국 안에 동맹 세력으로 정착시켰다. 394년 프리기두스 강 전투에서 서방의 찬탈자 에우게니우스를 물리치고 제국 전체를 잠시 혼자 다스렸으며, 이듬해 밀라노에서 죽었다. 죽은 뒤 제국은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동방)와 호노리우스(서방)에게 나뉘었고, 이후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사역과 업적
- 테살로니카 칙령(380년):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고백한 신앙, 곧 성부·성자·성령이 같은 본질의 한 하나님이라는 신앙을 따르는 사람만 '보편 교회의 기독교인'으로 인정한다고 선포했다. 이 칙령은 흔히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계기로 설명되지만, 국교화를 한 번의 칙령으로 볼지 여러 법령이 쌓인 과정으로 볼지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 동방 주교들을 모아 공의회를 열었고, 여기서 니케아 신조를 보완한 신경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흔히 니케아 신경이라 부르는 신앙고백이 이것이며, 성령에 관한 고백이 크게 늘어났다. 공의회는 성자가 성부보다 낮은 피조물이라고 본 아리우스주의를 배척했고, 이로써 삼위일체 교리가 정통으로 굳어졌다.
- 이교 금지: 391~392년 무렵 잇따라 낸 법령으로 이교(전통 로마 종교)의 제사와 신전 예배를 금지했다.
- 밀라노 주교와의 일: 390년 테살로니카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진압 과정에서 주민 수천 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성찬 참여를 금하고 공개 참회를 요구했고, 황제는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381년에 확정된 니케아 신경은 천주교·정교회·개신교가 함께 받아들이는 신앙고백이다. 한국 개신교의 주일 예배에서는 주로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그러나 대한성공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등 예전을 중시하는 교단은 성찬 예배에서 니케아 신경을 쓰며, 다른 교단들도 교리 교육에서 이 신경을 정통 삼위일체 신앙의 기준으로 가르친다. 암브로시우스가 황제의 참회를 받아 낸 일은 한국 교회의 설교와 교회사 교재에서 교회가 권력에 맞서 바른말을 한 사례로 자주 인용되며,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다룰 때 함께 논의된다.
평가
교회 전통에서는 정통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보호한 황제로 평가하여 '대제'라 부른다. 반면 황제의 권력이 신앙을 법으로 강제하고 이교와 이단을 처벌한 점은, 국가와 종교가 결합하여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 시작으로 비판받는다. 이 시기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피스 신전 파괴처럼 이교 시설에 대한 폭력이 잇따른 것도 비판의 근거로 거론된다. 침례교·재세례파 전통처럼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강조하는 교단에서는 이 시기를 교회가 국가 권력에 기대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테살로니카 학살 역시 그의 통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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