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코케이우스
인물
요하네스 코케이우스(1603~1669)는 독일 브레멘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개혁파 신학자이다.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언약 흐름으로 읽는 언약신학(계약신학)을 체계화했다.
생애
독일 브레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요하네스 코흐(Koch)이며, 당시 학자들의 관례에 따라 라틴어식 이름인 코케이우스(Cocceius)를 썼다. 브레멘과 함부르크에서 공부한 뒤 네덜란드 프라네커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히브리어를 비롯한 성경 언어에 뛰어나 브레멘과 프라네커에서 히브리어를 가르쳤고, 이후 프라네커에서 신학 교수가 되었다. 1650년 레이던 대학교 신학 교수로 옮겨 1669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대표 저작은 1648년에 낸 『하나님의 언약과 유언에 관한 교리 대요』(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 Dei)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타락 전 아담과 맺은 언약(행위 언약)과, 타락 뒤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언약(은혜 언약)을 구분했다.
- 구속 언약: 성부와 성자 사이에 사람의 구원을 두고 맺어진 영원한 약정이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개념은 그보다 앞서 다른 학자들도 언급했으나, 코케이우스가 체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점진적 폐지론: 행위 언약이 타락, 은혜 언약의 선포, 그리스도의 죽음, 몸의 부활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차례로 폐지된다고 보았다.
그는 교리를 주제별로 정리하던 당시 방식과 달리 구약과 신약을 역사의 순서에 따라 읽으려 했다. 이 때문에 후대에 성경신학(성경을 계시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연구하는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언약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표준 문서로 삼는 한국 장로교의 신학 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은 코케이우스의 주저보다 먼저 작성되었으므로, 그 언약 사상이 코케이우스에게서 나왔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에서 코케이우스는 주로 개혁주의 조직신학과 교회사 교재를 통해 언약신학 발전사의 주요 인물로 소개된다. 성경을 시대별로 구분해 읽는 세대주의와 언약신학을 비교할 때에도 자주 언급된다.
평가
코케이우스는 성경 본문과 구속 역사의 흐름을 중시한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당대에도 논쟁이 컸다. 위트레흐트의 신학자 기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를 중심으로 한 쪽은 그의 점진적 폐지론이 율법의 지속적 권위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특히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 계명의 의식적 성격이 폐지되었다는 그의 견해는 주일 성수 논쟁으로 번졌다. 이 논쟁으로 네덜란드 개혁교회 안에는 '코케이우스파'와 '보에티우스파'가 오랫동안 맞섰다. 또 구약 곳곳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예표를 지나치게 찾아낸다는 비판도 받았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그가 개혁파 정통에서 벗어났는지, 아니면 그 안에서 강조점만 달리했는지를 두고 견해가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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