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교회
조직·제도
민중교회는 노동자·도시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민중'으로 보고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하는 것을 선교의 중심으로 삼은 교회다. 1970~1980년대 한국에서 민중신학과 함께 형성되었다.
정의와 뜻
민중교회는 노동자, 도시 빈민, 농민처럼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민중'으로 부르고,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그들의 삶에 함께하는 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삼은 교회를 가리킨다. 주로 1970~1980년대 공장 지대와 도시 빈민 지역에 세워졌다. 많은 민중교회가 예배와 함께 야학(밤에 여는 학교), 탁아방, 노동 상담 같은 활동을 했다. 예배당은 지역 주민의 생활 공간으로도 쓰였다. 신학적 바탕은 민중신학이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민중교회 쪽은 다음 본문을 근거로 든다.
- 예수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러 왔다고 밝힌 누가복음 4:18. 이 구절은 이사야 61장 1-3절을 인용한 것이다.
-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누가복음 6장 20절.
- 억압에서 풀려나는 출애굽 이야기.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를 따른 '무리'(그리스어 '오클로스')에 주목했다. 그는 예수가 소외된 무리와 함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는 1950~1960년대부터 개신교 교단들이 공장 노동자와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벌인 산업선교·빈민선교가 토대가 되었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유신 체제를 거치며 이 현장 경험이 서남동, 안병무 등을 통해 민중신학으로 정리되었다. 1980년대에는 현장 목회자들이 민중교회를 잇달아 세우고 교단별 연합 조직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민중교회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함께했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교단마다 민중교회와 맺어 온 관계와 평가가 다르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교단으로 꼽힌다.
- 기독교대한감리회: 일부 목회자가 도시 빈민 선교를 바탕으로 민중교회를 세웠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산업선교 기관을 통해 노동자 선교를 이어 왔다.
- 보수 교단과 복음주의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등 보수 장로교단과 복음주의 진영 일부는 민중신학을 비판해 왔다. 죄와 구원을 사회·정치 문제로 좁히고, 개인의 회심과 전도를 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민중교회 쪽은 이에 대해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 붙드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라고 반론한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여러 민중교회는 지역 공동체 활동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아동센터, 협동조합, 노인·이주노동자 돌봄 등이 그 예다. 이들 가운데에는 스스로를 '지역 교회', '작은 교회'로 부르는 곳도 있다. 교인 수와 재정 규모가 작아 미자립교회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