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무
인물
안병무(1922~1996)는 한국의 신약성경 학자이자 민중신학을 세운 대표적 신학자로, 마가복음의 '무리(오클로스)'를 민중으로 읽는 해석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1922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간도로 옮겨 가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남쪽으로 내려왔고,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 서울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신앙 공동체를 꾸렸다. 이 공동체가 오늘날 향린교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은 평신도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후반 독일로 건너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신약성경학을 공부하고 1960년대 중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한신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가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투옥되기도 했다. 1996년 세상을 떠났다. 호는 심원(心園)이다.
사역과 업적
- 민중신학 정립: 서남동 등과 함께 민중신학(民衆神學)의 틀을 세웠다. 민중신학은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민중'의 처지에서 성경과 신앙을 해석하는 한국의 신학이다.
- 오클로스 해석: 마가복음에서 예수를 따르던 '무리'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오클로스'(ochlos)에 주목했다. 그는 오클로스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고, 예수와 이들이 함께 일으킨 일을 '민중 사건'이라 불렀다. 대표 저서로 「갈릴래아의 예수」가 꼽힌다.
- 연구소와 출판: 1970년대에 한국신학연구소를 세워 신학 연구서와 번역서를 펴냈고, 잡지 「현존」을 발행했다. 그의 글은 사후 전집으로 묶여 나왔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한국기독교장로회를 비롯한 진보 성향 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계열의 사회 참여 운동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빈민·인권 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 이른바 교회와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민중신학은 아시아에서 나온 독자적 신학으로 해외 학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와 교류한 인물로는 김재준, 함석헌 등이 있다.
평가
진보 진영에서는 그가 서구 신학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고난의 역사 속에서 성경을 읽어 낸 신학자라고 평가한다.
보수·복음주의 쪽의 비판도 있다. 비판자들은 민중신학이 구원을 사회적·정치적 해방 중심으로 좁히고, 민중을 사실상 구원의 주체처럼 다루어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성을 흐린다고 지적한다. 일부는 사회과학적 분석을 성경 해석에 끌어들인 점도 문제 삼는다. 이에 대해 민중신학 쪽은 민중을 신격화하려는 것이 아니며, 예수가 민중과 함께한 사건을 성경 본문에 근거해 드러내려 했다고 반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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