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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의 두 렙돈

성경 · 사건

과부의 두 렙돈은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헌금함 앞에서 가난한 과부가 가진 전부인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고, 그가 누구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한 사건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본문과 내용

이 사건은 마가복음 12:41-44과 누가복음 21:1-4에 나온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의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 사람들이 돈을 넣는 모습을 보았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었고,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두 렙돈을 넣었다. 예수는 제자들을 불러 이 과부가 누구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넉넉한 가운데서 넣었지만,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두 렙돈이 "한 고드란트"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배경

렙돈(헬라어 lepton)은 '작은, 얇은'이라는 뜻의 낱말에서 나온 이름이다. 당시 유통되던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이었다. 고드란트는 로마 화폐 콰드란스(quadrans)를 옮긴 말이다. 흔히 노동자 하루 품삯이던 한 데나리온의 64분의 1로 계산한다.

미쉬나(유대교 구전 율법집)는 성전에 나팔 모양의 헌금함 열세 개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 헌금함들이 놓인 곳을 학자들은 흔히 '여인의 뜰'로 추정한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구약은 과부를 고아·나그네와 함께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거듭 언급한다. 가진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에게 내어 준 사르밧 과부도 이 사건과 자주 나란히 읽힌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힘에 넘치도록 연보한 마게도냐 교회들을 칭찬한다(고린도후서 8:1-5). 또 할 마음이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신다고 말한다(고린도후서 8:12, 고린도후서 9장 6-8절). 이 구절들은 이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인용된다.

해석과 논점

  • 헌신의 본보기로 읽는 해석: 가장 널리 퍼진 읽기이다. 하나님은 액수보다 드리는 사람의 형편과 마음을 보신다는 가르침으로 이해한다. 설교에서는 두 렙돈 가운데 하나를 남길 수도 있었는데 둘 다 드렸다는 점이 흔히 강조된다.
  • 탄식으로 읽는 해석: 두 복음서 모두 이 사건 바로 앞에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을 꾸짖는 말씀을 둔다(마가복음 12:38-40, 누가복음 20:45-47). 바로 뒤에는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고가 이어진다. 20세기 후반 일부 성서학자들은 이 문맥을 근거로, 예수의 말이 칭찬이라기보다 가난한 사람의 생계까지 가져가는 종교 제도에 대한 탄식이라고 본다. 반면 많은 해석자는 본문이 과부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으며 두 해석이 함께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 본문에는 과부의 이름이나 나이가 나오지 않는다. 헌금 뒤에 그가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근거로 헌금하면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거나, 형편이 어려운 교인에게 전부를 드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선 적용이라는 비판이 여러 교단에서 제기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이 본문은 헌금에 관한 설교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본문 가운데 하나이다. "과부의 두 렙돈"은 적지만 정성을 다한 헌금이나 헌신을 가리키는 관용 표현으로도 쓰인다. 한편 십일조 논쟁이나 헌금 강요를 둘러싼 비판에서는 위의 탄식 해석이 함께 소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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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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