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38-39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마가복음 10:38-39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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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와 요한이 영광의 자리를 구하자 예수가 자신이 마실 "잔"과 받을 "세례"를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묻고, 그들도 그것을 받으리라고 답한 대목이다. 고난과 순교, 섬김의 제자도를 말하는 본문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세 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마가복음 10:32-34) 직후의 장면이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가 영광을 얻을 때 그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한다(10:35-37). 예수는 그들이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답하고, 자신이 마실 "잔"과 받을 "세례"를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두 제자가 "할 수 있나이다"라고 하자 예수는 그들도 그 잔과 세례를 받겠지만 좌우편 자리는 자기가 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10:40). 나머지 열 제자가 이 일로 분개하자 예수는 섬김에 관해 가르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10:45)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 마태복음 20:20-23의 평행 본문에서는 두 사람의 어머니가 이 청을 올린다.
해석
여기서 "잔"과 "세례"는 의식이 아니라 비유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 고난과 죽음으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잔"을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노나 정해진 운명을 가리키는 표현(이사야 51:17, 예레미야 25:15)과 연결하고, "세례"는 물에 잠기듯 고난에 휩싸이는 일로 본다. 겟세마네 기도의 "이 잔"(마가복음 14:36)과 누가복음 12:50의 "받을 세례"도 같은 뜻으로 이해한다.
- 대속과 고난 참여를 구분하는 읽기: 개혁주의·복음주의 주석가 가운데 많은 이가 이렇게 읽는다. 예수의 잔은 죄의 심판을 대신 지는 속죄의 잔이므로 제자들이 그것까지 나누어 질 수는 없다고 본다. 제자들에게 약속된 것은 그를 따르는 길에서 겪는 고난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 성례와 연결하는 읽기: 고대 교회에서는 순교를 '피의 세례'라 부르기도 했고, 이 구절과 누가복음 12:50이 그 배경으로 언급되었다. 일부 학자는 마가복음의 첫 독자들이 이 말을 교회의 세례·성찬과 겹쳐 들었으리라고 보고, 로마서 6장 3-6절의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받는 세례 사상과 견주기도 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 약속의 성취: 야고보는 헤롯 왕에게 칼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사도행전 12:2). 반면 요한은 교회 전승에서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이 약속을 순교에 한정하지 않고, 밧모섬에 머문 일(요한계시록 1:9)을 포함한 평생의 고난으로 넓게 읽는다.
- "할 수 있나이다"의 평가: 이 대답을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른 채 내놓은 자신감으로 보는 이들은, 예수가 체포될 때 제자들이 모두 달아난 일(마가복음 14:50)과 대비한다. 다른 이들은 예수가 그 대답을 꾸짖지 않고 약속으로 받아 준 데 주목한다.
- 번역과 사본: "세례"로 옮긴 그리스어 '밥티조'를 침례교에서는 "침례"로 부른다. 다만 이 구절은 비유적 용례여서 세례와 침례의 방식을 다투는 논쟁의 중심 근거로 쓰이지는 않는다. 또 마태복음 20:22-23의 평행 본문에는 후대 사본과 킹제임스역에만 "세례" 구절이 들어 있다. 이른 사본에는 이 구절이 없어서 개역 성경 등 많은 번역은 "잔"만 적는다.
한국 교회에서
10:45와 함께 임직식이나 직분자 교육에서 자주 인용된다. 이때 이 본문은 직분이 높은 자리나 명예가 아니라 섬김과 고난으로 부르는 것임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고난주간에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본문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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