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교회
교파 · 같은 말: 브레드린
형제교회는 182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시작된 형제운동에 뿌리를 둔 개신교 교파이다. 영어권에서는 플리머스 형제단이라고 부른다. 목사와 평신도를 나누는 직제와 교단 조직을 두지 않고, 장로들이 이끄는 지역 모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정의와 뜻
형제교회는 19세기 초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형제운동(Brethren movement)을 잇는 개신교 교파이다. 잉글랜드 플리머스의 모임이 널리 알려지면서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형제운동 쪽 교회들은 스스로 교파 이름을 쓰지 않았고 직분을 계급처럼 부르는 것도 피해 왔다고 설명한다. 영어 'Brethren'은 다른 개신교 전통의 이름에도 들어가므로, 이 문서에서는 플리머스 형제단 계열만 다룬다.
형제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교회 운영 방식이다.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 원리를 앞세운다. 그래서 목사와 평신도를 나누는 기성 교단의 직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장로가 모임을 이끈다. 상위 교단 조직은 만들지 않으며, 각 지역 교회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책임진다고 본다. 이 점에서 독립교회나 회중교회와 비슷한 면이 있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형제운동은 1820년대 더블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트리니티 칼리지와 관련된 사람들이 중심이었는데, 치과의사 앤서니 노리스 그로브스, 의학을 공부하던 에드워드 크로닌, 존 파넬, 성직자 존 넬슨 다비, 그리고 이들을 한데 모은 변호사 존 기포드 벨렛이다. 이들은 정해진 예배 의식이나 순서, 전임 사역자를 두지 않았다. 오직 성경을 길잡이로 삼아 성경에 적힌 대로 모이려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1831년 플리머스에 첫 모임이 세워졌고, 벤저민 뉴턴과 사무엘 트레겔레스가 이끌었다. 1848년에는 운동이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개방적 형제교회(Open Brethren)'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가르침을 엄격하게 따르는 것으로 알려진 '폐쇄적 형제교회(Exclusive Brethren)'이다. 고아원 사역으로 이름난 조지 뮐러와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선교사 짐 엘리엇 등이 이 전통에서 나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한국에는 두 갈래로 들어왔다고 설명된다.
- 일제강점기 이전: 1896년 12월 일본인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 1863~1921)가 들어와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는 '기독동신회'를 조직해 형제운동을 전했다.
- 1950년대 후반 이후: 1958년 무렵 부평의 미군 교회에서 병사들이 잇따라 회심했다. 그곳에 영어를 배우러 간 한국 청년들이 이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들이 형제단 선교사들과 이어지면서 오늘날 한국 형제운동이 시작되었다고 설명된다.
지금 한국에서 플리머스 형제교회로 알려진 교회들은 대체로 폐쇄적 형제교회가 아닌 개방적 형제교회 계열이다. 교회는 담임목사 대신 장로 형제들이 이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회 일을 전임으로 맡는 장로가 받는 사례는 교회마다 다르다. 신자들의 헌금으로 주는 곳도 있고 금액을 정해 주는 곳도 있으며, 재정이 어려운 교회에서는 장로가 스스로 생계를 꾸리며 섬기기도 한다. 노회·총회 같은 교단 조직을 두는 장로교나 감리교와는 교회 정치가 크게 다르다.
한국 교회 일부에서는 '형제교회'라는 이름을 쓰는 몇몇 집단이 구원파와 비슷하다며 경계하는 글을 내기도 했다. 반면 형제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이 구원파와는 다른 교회라고 말한다. 주요 교단 총회가 형제운동 계열 전체를 두고 공식 판단을 내렸는지는 더 확인해야 한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6곳
- 플리머스 형제단 - 위키백과
- 개방적인 형제교회 - 위키백과
- [배경] 플리머스 형제단, 안식교, 구세군의 한국선교 - 평양대부흥
- 교회 소개
- 형제교회(Brethen Church)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 형제교회(Brethren, 플리머스 형제단)을 변호하며 - 해피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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