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모니데스
인물
마이모니데스(1138경~1204)는 중세 유대교의 랍비이자 철학자, 의사이다. 『미쉬네 토라』와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썼으며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 신학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
생애
이슬람 통치 아래의 이베리아반도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히브리어 이름은 모세 벤 마이몬이고, 유대교에서는 머리글자를 딴 "람밤"으로 부른다. 그가 어릴 때 비관용 정책을 편 무와히드 왕조가 코르도바를 점령했다. 그 뒤 가족은 오랫동안 떠돌다가 북아프리카 페스, 팔레스타인을 거쳐 1160년대 중반 이집트 푸스타트(옛 카이로)에 자리 잡았다. 무역을 하던 동생 다윗이 인도양에서 배와 함께 숨진 뒤에는 의술로 생계를 이었다. 아이유브 왕조의 궁정 의사로 일하며 이집트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도 맡았다. 1204년에 세상을 떠났고, 전승에 따르면 갈릴리의 티베리아에 묻혔다.
사역과 업적
- 『미쉬나 주석』: 유대교 구전 율법집인 미쉬나를 아랍어로 해설한 책이다. 이 책에서 유대교 신앙의 핵심을 "13가지 신앙 원리"로 정리했다.
- 『미쉬네 토라』: 1180년경 완성한 14권의 율법 법전이다. 방대한 탈무드의 율법 논의를 주제별로 정리해 히브리어로 썼다.
-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1190년경 아랍어로 쓴 철학서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구약성경의 신앙을 조화시키려 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엇이 아닌지"로만 말할 수 있다는 부정신학(否定神學)을 펼쳤고, 성경의 신인동형적 표현(하나님을 사람처럼 묘사하는 표현)을 비유로 해석했다.
- 성경 본문 전승: 『미쉬네 토라』에서 율법 두루마리를 쓰는 규정을 다루며 이집트에 있던 벤 아셰르 가문의 사본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 사본은 오늘날 알레포 사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권위 덕분에 이 사본은 마소라 본문의 표준 사본으로 존중받게 되었다.
- 그 밖에 아랍어로 여러 의학 저술을 남겼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에 직접 끼친 영향은 크지 않다. 다만 몇 가지 경로로 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 신학교의 구약학 수업에서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역사, 알레포 사본을 다룰 때 그의 이름이 나온다.
- 중세 철학과 조직신학 수업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랍비 모세"라는 이름으로 그를 인용한 사례를 통해 소개된다.
- 유대교가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설명할 때 그의 법전과 13가지 신앙 원리가 자주 언급된다.
평가
유대교 안에서 그는 "모세에서 모세까지 모세 같은 이가 없었다"는 말로 기려질 만큼 높은 권위를 지닌다. 그러나 생전과 사후에 비판도 있었다. 그의 철학적 성경 해석과 부활 이해를 두고 논란이 일어 1191년 무렵 『부활에 관한 논고』를 써서 해명했다. 13세기에는 그의 저술을 둘러싼 이른바 "마이모니데스 논쟁"이 벌어졌고, 프랑스에서 그의 책이 불태워진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입장은 양면적이다. 기독교 예배를 우상숭배로 분류한 대목이 있다. 한편 『미쉬네 토라』 원본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세상을 메시아 시대로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본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은 중세 검열로 많은 판본에서 빠졌다.
함께 보기 7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