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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장 26-3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히브리서 10:26-31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배교(背敎, 믿음을 버림)를 엄하게 경고하는 히브리서의 단락이다.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는 표현 때문에 구원의 상실 여부와 성도의 견인을 다루는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히브리서의 저자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서신은 박해와 낙심 속에서 신앙을 놓을 위기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가 옛 제사 제도보다 낫다는 것을 길게 논증한다. 바로 앞의 히브리서 10:19-25는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권한다. 이 단락은 그 권면을 저버리는 경우를 경고한다. 흔히 히브리서 안에 있는 다섯 개의 경고 단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8절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사형을 집행하던 율법 규정(신명기 17:6)을 떠올리게 하고, 30절은 신명기 32:35-36을 인용한다. 이어지는 32-39절에서 저자는 독자들이 예전에 고난을 견딘 일을 상기시키며 격려로 돌아선다.

해석

"짐짓"(헬라어로 '고의로')과 '죄를 범하다'는 현재형으로 쓰였다. 그래서 여러 해석자는 이 구절이 우발적인 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본다.

  • 개혁주의(칼빈주의)의 읽기: 칼빈주의 전통은 이 구절을 참으로 거듭난 신자가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보지 않는다. 한 가지 설명은 교회 공동체에 겉으로 속했다가 떠난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다른 설명은 경고 자체가 하나님이 성도를 끝까지 지키시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은 성도의 견인 교리와 연결된다.
  • 아르미니우스주의·웨슬리 신학의 읽기: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신학 전통은 이 구절을 실제로 믿었던 사람도 고의적 불신앙으로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실제적 경고로 읽는다. 감리교·성결교·오순절 계열에서 이 이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 초대교회의 엄격한 읽기: 고대에는 세례 이후 지은 중한 죄는 다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근거로 이 구절과 히브리서 6:4-6을 든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교회 전체는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논쟁과 쟁점

29절의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가 쟁점이다. 아르미니우스 계열은 이 표현이 그 사람이 진짜 신자였다는 증거라고 본다. 개혁주의 쪽은 이를 언약 공동체에 외적으로 참여했다는 뜻으로 풀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한편 신자가 회심 뒤에 짓는 모든 죄에 이 구절을 적용해 두려움을 주는 쓰임은 문맥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여러 교단에서 나온다. 이 구절은 회개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말로 읽기보다, 마가복음 3장 28-30절의 성령 모독이나 요한일서 5장 16절의 '사망에 이르는 죄'와 함께 비교해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목회 상담에서는 "이 죄를 지었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자체가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표시"라는 설명이 자주 쓰인다. 다만 이것은 해석이 아니라 목회적 권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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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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