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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장 14-1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10:14-15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부름-믿음-들음-전파-보냄'으로 이어지는 연쇄 질문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필요함을 말한 구절이다. 선교사 파송과 설교의 근거로 자주 인용되며, '보내심'이 누구에게 해당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문맥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인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이 왜 복음을 믿지 않았는지를 다룬다. 바울은 바로 앞 13절에서 요엘 2:32을 인용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이어 이 구절에서 부르기 위해서는 믿어야 하고, 믿기 위해서는 들어야 하며, 듣기 위해서는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전하는 사람은 보냄을 받아야 한다는 질문을 차례로 던진다. 15절 끝은 이사야 52:7의 인용이다. 이 구절은 원래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자를 노래한 말이다. 바울은 16절에서 이사야 53:1을 인용한 뒤 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정리한다. 18~21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미 들었으나 순종하지 않았다고 논증을 이어 간다.

해석

  • 선교적 읽기: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 단체는 이 질문들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도자와 선교사를 보내야 하는 근거로 읽는다. 이 읽기에서는 보내는 쪽(교회·후원자)과 가는 쪽(선교사)을 하나의 사역으로 함께 이해한다.
  • 개혁주의의 읽기: 개혁주의 전통은 하나님이 믿음을 일으키실 때 통상적으로 쓰시는 수단이 선포된 말씀, 곧 설교라고 보며, 이 구절을 그 근거로 든다. "보내심"은 교회가 공적으로 세운 설교자의 소명과 연결해 읽는 경우가 많다.
  • 문맥 중심의 읽기: 여러 주석가는 14~15절이 일차적으로는 선교 명령이 아니라고 본다. 이스라엘이 듣지 못해서 믿지 못한 것이 아님을 밝히려는 논증의 한 단계라는 것이다. 18절에서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라고 다시 묻는 흐름을 근거로 든다.

논쟁과 쟁점

  • 보내심의 범위: "보내심"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전통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루터교와 장로교 등은 교회가 안수해 세운 교역자의 공적 설교 사역을 중심에 두고, 공적 설교에는 정당한 부름이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 만인제사장을 강조하는 쪽과 평신도 전도 운동은 모든 성도를 보냄 받은 사람으로 읽는다.
  • 듣지 못한 사람의 문제: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의 구원 문제를 논할 때도 이 구절이 인용된다.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으므로 선교가 시급하다는 읽기가 있다. 반면 이 구절은 그 문제 자체를 다루는 본문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 번역과 사본: 15절의 인용은 이사야 원문에 있는 "산을 넘는"이라는 표현이 빠진 형태다. 후대 사본 일부(킹제임스 역이 따른 본문)에는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이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으나, 오늘날 비평 본문은 이를 넣지 않는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짧은 본문을 따른다.

한국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 예배, 선교 주일, 선교 대회에서 자주 낭독된다. "보내는 선교사"라는 말과 함께 선교 후원을 권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아름다운 발"이라는 표현은 전도와 선교에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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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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