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페우타이
역사
테라페우타이는 1세기 유대인 철학자 필론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근교에 살았다고 기록한 유대인 금욕·관상 공동체이다. 4세기 교회사가 유세비우스가 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소개하면서 수도원 전통의 기원과 관련해 오래 논의되었다.
개요
테라페우타이(그리스어 Therapeutai)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기원전 20년경~기원후 50년경)이 저서 「관상적 삶에 관하여」(De Vita Contemplativa)에서 소개한 유대인 공동체이다. 여성 구성원은 테라페우트리데스라 불렸다. 필론은 이 이름을 두 가지로 풀이했다. 하나는 정념에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예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들에 관한 정보는 사실상 필론의 이 책 하나에서 나온다.
배경
기원전 3세기 이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이곳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이 나왔고, 그리스 철학과 유대교 전통을 함께 읽는 학문 풍토가 자랐다. 필론은 이 풍토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경을 문자 너머의 영적 의미로 읽는 풍유적(알레고리) 해석을 즐겨 썼다. 필론은 다른 글에서 팔레스타인의 에세네파를 '실천적 삶'의 본보기로 소개했고, 이에 견주어 테라페우타이를 '관상적 삶'의 본보기로 그렸다. 여기서 관상(觀想)은 세상일에서 물러나 하나님과 진리를 깊이 바라보고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전개
필론의 기록에 따르면 테라페우타이는 1세기 전반, 알렉산드리아 근처 마레오티스 호수 위쪽 언덕에 모여 살았다. 구성원들은 재산을 가족에게 넘기고 공동체에 들어왔다. 저마다 작은 독방에서 지내며 엿새 동안 홀로 성경과 선조들의 글을 읽고 찬송을 지었다. 새벽과 저녁에 기도했고, 해가 진 뒤에야 빵과 소금, 물 같은 소박한 음식을 먹었다. 며칠씩 금식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안식일에는 공동 집회소에 모였다. 남녀는 낮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앉았고, 가장 연장자가 성경을 풀어 가르쳤다. 일곱 주를 주기로 한 번씩 큰 모임도 열었다. 이 모임에서는 함께 식사한 뒤 밤을 새워 찬송했다. 남자 합창대와 여자 합창대가 따로 노래하다가 하나로 합쳤는데, 필론은 이것이 홍해 도하 뒤에 모세와 미리암이 백성과 함께 부른 노래를 본뜬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와 영향
4세기 초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교회사」에서 필론이 묘사한 사람들을 마가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세운 교회의 초기 그리스도인으로 보았다. 그는 이들의 금욕, 공동 찬송, 성경 해석을 당시 교회의 관습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 해석은 중세를 거쳐 오래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테라페우타이는 그리스도교 수도 생활의 선구자로 자주 언급되었고, 필론의 글도 교회 안에서 보존되었다.
평가
근대 이후 학자들은 대체로 테라페우타이를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대인 공동체로 본다. 필론이 1세기 전반에 활동했으므로 그리스도교 수도원이 생기기 훨씬 전이고, 묘사된 관습도 유대교의 틀 안에서 설명된다는 이유에서다. 19세기 후반에는 「관상적 삶에 관하여」가 후대 그리스도인이 필론의 이름을 빌려 쓴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오늘날에는 필론의 진작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공동체가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로 존재했는지, 필론이 철학적 이상을 담아 꾸민 부분은 얼마나 되는지는 지금도 논의된다. 사해 사본 발견 뒤에는 쿰란 공동체나 에세네파와 비교하는 연구가 활발해졌다. 남녀가 함께 참여한 종교 공동체라는 점에서 고대 유대교 안에서 여성의 신앙 활동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주목받는다. 개신교 역사 서술에서 테라페우타이는 주로 신구약 중간기와 1세기 유대교의 다양성, 그리고 그리스도교 금욕·수도 전통의 기원을 설명할 때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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