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주교 박해
역사 · 같은 말: 천주교 박해
조선 천주교 박해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조선 조정이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고 탄압한 일련의 사건이다. 신유·기해·병오·병인박해를 흔히 4대 박해라 부른다.
배경
천주교는 18세기 후반 중국을 거쳐 들어온 서학(西學, 서양 학문) 서적을 통해 일부 남인 학자들에게 알려졌고, 이를 계기로 신자 공동체가 생겨났다. 조선 조정은 천주교를 유교 질서를 해치는 사학(邪學, 그릇된 가르침)으로 보았다. 1791년 전라도 진산의 윤지충과 권상연은 북경 주교의 제사 금지 방침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태웠다. 두 사람은 이 일로 전주에서 참수되었는데, 이를 신해박해라 한다. 이 사건으로 천주교가 부모와 임금을 저버리는 가르침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1795년에는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체포하려다 놓친 일을 계기로 을묘박해가 일어났다.
전개
천주교회는 다음 네 사건을 흔히 '4대 박해'라 부른다.
- 신유박해(1801):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왕대비가 어린 왕을 대신해 나랏일을 돌봄)을 맡은 정순왕후가 천주교를 엄하게 금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주문모 신부와 정약종 등이 처형되었다. 정권을 잡은 노론 벽파가 정조 때 개혁을 이끈 남인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함께 띠었다고 평가된다.
- 기해박해(1839): 헌종 때인 1839년 3월부터 10월까지 이어졌다. 신유박해 뒤 30여 년 동안 교회는 성직자 없이 평신도만으로 유지되었는데, 그 뒤 조선에 들어온 앵베르 주교와 모방·샤스탕 신부가 이때 처형되었다. 정하상·유진길·조신철 등 지도자급 신자들도 함께 처형되었다. 정하상은 천주교를 변론하는 「상재상서」를 남겼다. 조정은 사교(邪敎)를 물리치라는 임금의 글인 「척사윤음」을 반포했다.
- 병오박해(1846): 조선인 첫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선교사들이 들어올 뱃길을 살피다가 황해도 순위도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되었으며, 이 박해로 김대건 신부를 포함해 9명이 순교하였다.
- 병인박해(1866~1871):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일어났다. 남종삼·홍봉주 등이 프랑스와 손잡고 러시아의 남하를 막자는 방책을 건의한 일이 발단이 되었다.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인 선교사 9명이 서울 새남터와 충청도 보령 갈매못 등에서 처형되었다. 박해를 피해 조선을 빠져나간 리델 신부가 도움을 요청하자 프랑스 함대가 출동하였고, 이것이 병인양요이다. 박해는 1871년까지 네 차례 물결로 이어졌다.
결과와 영향
병인박해의 희생자는 8천~1만 명으로 추산되며, 대부분은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포도청 기록인 「포도청등록」에는 병인박해 때 체포된 신자 2,116명 가운데 1,549명이 순교한 것으로 나와 있다. 박해가 거듭되면서 교회는 성직자와 지도자를 잃고 오랫동안 침체를 겪었다. 그래도 신자들은 「기해일기」 같은 순교 기록을 남기며 공동체를 이어 갔다.
천주교회는 이후 순교자들을 공식적으로 기렸다. 기해·병오박해 순교자들은 1925년 로마에서 시복(복자로 선포함)되었다. 1984년 5월 6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에서 순교자 103위를 시성(성인으로 선포함)하였다. 2014년 8월 16일에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권상연 등을 시복하였다.
평가
천주교회는 이 박해를 신앙을 지킨 순교의 역사로 기린다. 역사학계는 종교 탄압이 당파 싸움, 그리고 서양 세력에 대한 경계와 얽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신유박해에 비해 기해박해는 정치적 성격이 옅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개신교 선교는 18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개신교에서도 이 박해를 한국에 기독교가 받아들여진 역사의 앞선 장으로 다룬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13곳
- 신유박해 1801 - 우리역사넷
- 신유박해 - 위키백과
- 기해박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을묘박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기해박해 1839 - 우리역사넷
- 기해박해 마무리하며 「척사윤음」 반포 - cpbc News
- 병오박해 1846 - 우리역사넷
- 병오박해 - 한국가톨릭대사전
- 병인박해 - 한국가톨릭대사전
- 병인박해 - 디지털보령문화대전
- 7년간 신자 8000여 명 희생 - cpbc News
- 신해박해 - 가톨릭신문
- 진산 성지 -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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