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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는 조선 헌종 5년인 1839년(기해년)에 일어난 천주교 탄압 사건이다. 이 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세 명과 정하상 등 조선 천주교회의 지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배경

1801년 신유박해로 조선 천주교회는 큰 타격을 입었다. 신유박해는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던 정순왕후가 주도한 박해였다. 그 뒤 살아남은 신자들은 성직자를 모셔 오려고 애썼다. 이 일에 앞장선 사람이 정하상(1795~1839)이다. 그는 신유박해 때 아버지 정약종을 잃었고, 이후 20년 넘게 중국을 오갔다.

이런 노력 끝에 1830년대 중반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두 사람이 조선에 들어왔다. 피에르 모방 신부와 자크 샤스탕 신부다. 이어 1837년에는 로랑 앵베르 주교가 들어왔다. 앵베르 주교는 제2대 조선대목구장이었는데, 대목구장은 정식 교구가 세워지지 않은 지역의 교회를 맡은 주교를 말한다. 선교사들이 활동하면서 교세가 되살아나고 신자가 늘었다. 그러자 이를 경계한 조정에서 다시 박해 논의가 일어났다.

전개

  • 1839년: 우의정 이지연(1777~1841)이 박해를 주도하였다. 이지연은 천주교인을 아비도 임금도 모르는 무리, 곧 '무부무군(無父無君)'이라고 몰아붙이며 대표적인 신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하였다.
  • 1839년 7월 11일: 정하상이 체포되었다. 그는 앵베르 주교를 돕고 있었고, 신학생으로 뽑혀 라틴어와 신학을 배우던 중이었다. 체포될 때 그는 미리 써 둔 「상재상서(上宰相書)」를 내놓았다. 제목은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며, 박해를 이끈 이지연에게 보낸 글로 알려져 있다.
  • 박해가 진행되는 동안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가 모두 순교하여 세 선교사의 짧은 활동은 막을 내렸다. 정하상과 그의 어머니 유소사, 유진길, 조신철 등도 이때 순교하였다.
  • 1839년 11월 23일: 정부가 「기해척사윤음(己亥斥邪綸音)」을 반포하였다. 척사윤음은 '그릇된 가르침을 물리치라'는 임금의 글이다. 이로써 박해는 시작된 지 일곱 달 남짓 만에 일단락되었다. 정부가 박해를 끝낸 것은 대표적인 신자들을 대부분 잡아 처형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결과와 영향

지도자를 잃은 조선 천주교회는 한동안 침체에 빠졌다. 기해척사윤음은 조인영이 지은 글로, 모두 2,226자다. 조선의 네 차례 척사윤음 가운데 가장 길다. 한문본과 한글로 옮긴 언해본이 함께 전국에 배포되었다. 앞선 신유척사윤음은 천주교인의 죄와 처벌 내용을 알리는 데 무게를 두었다. 반면 기해척사윤음은 「상재상서」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천주교가 왜 그릇된 가르침인지를 설명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 박해 중에 두 가지 중요한 문헌이 나왔다.

  • 「상재상서」: 별첨 글까지 합쳐 3,500자 남짓의 짧은 글이다. 천주교 교리 설명(십계명 포함), 신앙을 변호하는 호교론(護敎論), 신앙의 자유를 호소하는 내용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주교에서는 한국 교회 최초의 호교론서로 평가한다.
  • 「기해일기」: 앵베르 주교와 여러 신자가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이때 순교한 앵베르 주교, 모방·샤스탕 신부, 정하상 등은 뒷날 성인으로 선포되어 천주교에서 공경받는다.

평가

기해박해는 신유박해와 비교되어 평가되곤 한다. 기해박해 때 처형된 사람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또 신유박해 때처럼 천주교를 물리치자는 상소가 많이 올라오지도 않았다. 이런 점을 들어 정치 쟁점이라기보다 종교적 성격이 더 뚜렷한 박해였다고 보는 해석이 있다.

천주교회는 이 사건을 순교 신앙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2019년에는 박해 180주년을 맞아 정하상을 다룬 연극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공연되는 등 기념 행사가 열렸다.

기해박해는 개신교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기 40여 년 전의 일이다. 이 사건은 조선 사회가 서양에서 온 그리스도교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탄압했는지 보여 주는 장면으로 다루어진다. 정하상이 「상재상서」에서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다는 점도 함께 언급된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5곳
  1. 기해박해 - 위키백과
  2. 기해박해 마무리하며 「척사윤음」 반포, 지도자 잃은 교회 침체에 빠져 (가톨릭평화신문)
  3. 기해박해와 정하상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4. [교구에서 만난 한국교회사] (14) 요당리성지: 기해박해 (가톨릭신문)
  5. 연극 '정하상' 180년 전, 순교 직전 무슨 일이… (가톨릭신문)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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