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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 백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박해의 경과와 대책을 흰 비단에 적은 밀서이다.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었고, 이 일로 천주교 탄압이 더 심해졌다.

배경

1801년(순조 1년)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를 대대적으로 잡아들였다. 이 사건을 신유박해라 한다. 이때 조선에 몰래 들어와 활동하던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비롯해 많은 신자가 처형되었다.

황사영은 서울 출신으로,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직접 등용을 약속할 만큼 기대를 받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가 되어 초기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박해가 시작되자 체포를 피해 지금의 충청북도 제천 배론의 산속 토굴에 숨었다.

전개

  • 작성: 황사영은 배론의 토굴에서 북경 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가로 약 62cm, 세로 약 38cm의 흰 비단에 가는 붓글씨로 1만 3천여 자를 적었다. 비단(帛, 백)에 쓴 글이어서 '백서(帛書)'라고 부른다. 중국으로 가는 밀사의 옷 속에 넣어 보낼 계획이었다.
  • 내용: 인사말,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 순교자들의 행적, 교회를 다시 세우고 신앙의 자유를 얻을 방안, 맺음말로 이루어져 있다. 제안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서양 교회에 경제적 지원을 청한다. 북경과 비밀 연락망을 만든다. 교황이 청나라 황제에게 글을 보내 조선이 선교사를 받아들이게 한다. 청 황제가 조선을 감독(감호)하게 한다. 서양의 배와 군대를 보내 조정을 압박한다.
  • 전달 시도: 해마다 동지 무렵 중국에 보내던 사신단인 동지사 일행에 신자 황심과 옥천희를 끼워 보내 편지를 전하려 했다.
  • 발각: 옥천희는 1801년 6월 북경에서 돌아오다 의주에서 붙잡혔다. 황심은 음력 9월 15일에 체포되었다. 황심의 자백으로 황사영도 음력 9월 29일 배론에서 체포되었고, 이때 백서가 압수되었다.

결과와 영향

  • 조정은 백서를 역모의 증거로 삼았다.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몰려 27세에 능지처참(몸을 여러 토막으로 베어 죽이는 극형)을 당했다.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과 천주교 탄압도 더욱 강해졌다.
  • 이미 유배 중이던 정약용은 이 사건으로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 조정은 백서의 사본이 중국에 전해져 주문모 신부를 처형한 사실이 알려질까 염려했다. 그래서 그해 10월에 떠나는 동지사에게 진주사(사정을 설명하는 사신)의 임무를 함께 맡겨 박해가 정당했다고 설명하게 했다. 이 무렵 조정은 원문을 크게 줄인 이른바 가백서(假帛書)도 만들었다. 가백서에서는 청나라의 감독이나 종주권에 관한 내용은 빼고, 서양의 배와 군대를 청한 부분을 남겨 박해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 원본은 의금부에 보관되어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 뒤 옛 문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어 당시 교구장 뮈텔 주교의 손에 들어갔다. 뮈텔 주교는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의 시복식(가톨릭에서 순교자를 '복자'로 공식 선포하는 예식) 때 이를 교황 비오 11세에게 바쳤다. 지금은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4년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때 국내에 공개되었다.

평가

천주교 쪽에서는 백서를 신유박해의 경과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당시 사람이 직접 기록한 귀중한 사료로 본다. 초기 한국 천주교사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국내 사정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된다.

한편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고 청나라 황제의 권력과 서양의 군사력까지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에서는 사대주의나 외세 의존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나왔다. 이와 달리 백서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혹독한 박해를 겪은 신자가 절박한 상황에서 쓴 글이며,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석한다. 후대의 격렬한 반응이 원문보다 조정이 줄여 만든 가백서에 기댄 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사건은 개신교가 조선에 전해지기 80여 년 전에 천주교에서 일어났다. 조선 사회와 국가 권력이 서양 종교와 처음 부딪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7곳
  1.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황사영 백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황사영 백서 - 우리역사넷
  4. 황사영과 『백서(帛書)』(여진천, 국가기록원)
  5. [사료에 얽힌 순교의 발자취] 1. 황사영 백서 - 가톨릭신문
  6. (37)황사영 백서 사건이란 - 제주일보
  7. ‘1만3384자’ 황사영 핏빛 편지에 담긴 뜨거운 신앙 서사 「백서(帛書)」 - 가톨릭신문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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