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21-2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야고보서 2:21-24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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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을 들어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말하는 구절이다. 바울의 이신칭의와 어긋나 보여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다룰 때 자주 논의된다.
문맥
야고보서는 전통적으로 주의 형제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야고보서 1:1)에게 쓴 편지로 알려져 있다. 이 구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고 묻는 2장 14-26절 단락에 속한다. 저자는 헐벗은 형제를 말로만 위로하는 예와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19절)를 든 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린 일(창세기 22장)을 증거로 내세운다. 25절에서는 라합을 예로 든다. 23절은 창세기 15:6을 인용하면서, 그 말씀이 이삭 사건에서 "응하였다", 곧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호는 역대하 20:7과 이사야 41:8에도 나온다.
해석
- 조화적 읽기: 개신교 해석자 다수는 바울과 야고보가 반대한 대상이 서로 다르다고 본다.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율법 행위를 반대했고, 야고보는 열매 없이 말로만 하는 믿음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 읽기에서 '의롭다 하다'는 바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선언된다는 칭의의 뜻이고, 야고보에게는 참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 증명된다는 뜻이다. 장 칼뱅도 이 구절의 칭의를 의가 증명되는 것으로 풀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루터의 문제 제기: 마르틴 루터는 1522년 독일어 신약성경 서문에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 불렀다. 다만 야고보서를 정경에서 빼지는 않았다.
- 웨슬리 전통의 읽기: 웨슬리 신학을 따르는 감리교·성결교 등에서는 이 구절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사랑의 행함으로 성화(거룩해져 감)에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과 연결해 읽는 경우가 많다.
- 천주교의 읽기: 천주교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칭의 교령에서 24절을 근거로 들어, 의롭게 된 사람이 선행을 통해 의가 자라난다고 가르쳤다.
논쟁과 쟁점
- 종교개혁의 "오직 믿음"(다섯 솔라)과 24절의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가 문자로는 정면으로 부딪친다. 이 점이 이 구절을 둘러싼 핵심 쟁점이다. 바울도 같은 창세기 15:6을 인용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한다(로마서 4:3, 갈라디아서 3:6).
- 두 저자가 근거로 삼는 장면도 다르다. 바울은 할례 이전의 창세기 15장에 주목하고, 야고보는 그 뒤에 일어난 창세기 22장의 순종에 주목한다. 해석자들은 이 차이를 조화적 읽기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 이 구절을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주장의 근거로 떼어 쓰거나, 반대로 바울과 맞지 않는다며 가볍게 넘기는 것은 모두 문맥을 떠난 읽기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설교에서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할 때, 그리고 교인의 신앙과 삶이 어긋나는 문제를 지적할 때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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