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인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182~1226)는 중세 이탈리아의 수도자로, 청빈한 삶을 따르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세웠다. 천주교의 성인이며 성탄 구유 전통을 시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이탈리아어 Francesco d'Assisi)는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에서 부유한 옷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 천주교는 '성 프란치스코'라고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흔히 '성 프랜시스'라고 부른다. 젊은 시절 이웃 도시 페루자와 벌인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고, 풀려난 뒤 병을 앓으면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허물어진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내 집을 고치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끝에 아시시 주교 앞에서 상속을 포기했고, 이후 가난하게 살며 나병 환자를 돌보고 성당을 고쳤다. 1226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났고, 1228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성인으로 선포했다.
사역과 업적
- 작은 형제회 창설: 예수가 제자들에게 돈과 여벌 옷 없이 다니라고 한 말씀(마태복음 10:9-10)을 따라 무소유와 순회 설교의 삶을 시작했다.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자 1209년 무렵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구두 승인을 받았고, 1223년 교황 호노리오 3세가 회칙을 정식으로 승인했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함께 생겨난 공동체: 아시시의 클라라가 이끈 여성 수도 공동체(클라라회)와, 가정을 가진 신자들이 따르는 재속회가 그의 영향 아래 생겨났다.
- 술탄 방문: 1219년 제5차 십자군 시기에 이집트로 건너가 술탄 알카밀을 만나 복음을 전하려 했다.
- 그레초의 성탄: 1223년 성탄절에 그레초에서 구유와 소·나귀를 두고 예수의 탄생을 재현하며 예배를 드렸다. 이 일이 오늘날 성탄 구유 장식의 출발점으로 널리 꼽힌다.
- 피조물의 찬가: 해·달·바람·물을 '형제', '자매'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었다. 흔히 '태양의 찬가'라고 부른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 개신교 찬송가 '온 천하 만물 우러러'는 '피조물의 찬가'를 바탕으로 만든 영어 찬송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로 시작하는 '평화의 기도'는 그의 기도로 알려져 교단을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인다. 다만 이 기도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처음 나타났으며, 그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생태 보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개신교의 창조절 논의와 창조 세계 돌봄 논의에서도 그가 자주 인용된다.
평가
천주교는 그를 가장 널리 사랑받는 성인 가운데 하나로 공경한다. 개신교 안에서는 종교개혁 이전에 청빈·겸손·섬김으로 복음을 실천한 본보기로 존경하는 시각이 있다. 반면 개혁주의를 비롯한 일부 개신교 신학자는 그의 신앙이 수도원 제도, 성인 공경, 그가 몸에 그리스도의 상처(오상)를 받았다는 전승 같은 중세 가톨릭 신앙 체계 안에 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신앙의 본보기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학계에서는 그의 전기가 대부분 사후에 쓰인 성인전이어서, 오늘날 알려진 모습에는 후대에 덧붙여지고 이상화된 부분이 섞여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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