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역사
교리·신학
신명기 역사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하까지를 신명기의 신학으로 엮은 하나의 역사서로 보는 구약학 학설이다. 1943년 독일 학자 마르틴 노트가 처음 체계화했다.
정의와 뜻
신명기 역사(Deuteronomistic History)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사무엘하, 열왕기상·열왕기하가 신명기를 서론으로 삼아 한 흐름으로 편집된 역사서라고 보는 구약학의 학설이다. 이 책들을 엮었다고 가정하는 편집자 또는 편집 집단을 신명기 사가(史家, 역사를 기록한 사람)라고 부른다. 한국어로는 '신명기적 역사', '신명기 역사서'라고도 한다. 히브리 성경에서 이 책들은 '전기 예언서'로 묶이며, 룻기는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성경적·역사적 배경
독일 구약학자 마르틴 노트가 1943년에 이 학설을 처음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노트는 바벨론 포로기에 한 저자가 이 역사를 썼다고 보았다. 1970년대 이후에는 요시야 시대에 1차 편집이 있었고 포로기에 2차 편집이 더해졌다는 이중 편집설, 여러 층의 편집을 구분하는 견해 등이 함께 제시되었다.
이 학설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 주제를 근거로 든다.
- 하나님이 택한 한 곳에서만 예배하라는 명령(신명기 12장)을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한다.
- 언약에 충실하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는 원리(신명기 28장)가 이야기 전체에 깔려 있다.
- 여호수아 23장, 사무엘상 12장, 열왕기하 17장 같은 연설과 해설에서 역사의 의미를 풀이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이 역사는 북이스라엘 멸망과 바벨론 포로가 백성이 언약을 저버린 결과임을 설명하려고 쓰였다.
한국 교회에서의 실제
이 용어는 설교보다는 신학교의 구약 개론 수업과 주석서에서 주로 쓰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등의 신학교에서는 대체로 이 학설을 구약 연구의 주요 학설로 소개한다. 반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고신)·(합신) 등 개혁주의 보수 성향의 학계는 신명기를 모세가 썼다는 전통적 입장을 지킨다. 그래서 신명기를 후대 편집물로 보는 전제에는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다만 보수 쪽 학자들 가운데에도 이 책들에 신명기의 언약 신학이 일관되게 흐른다는 점은 인정하고 성경 읽기에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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