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33-3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사도행전 20:33-34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자신은 남의 재물을 탐하지 않았고 일행의 필요를 손수 벌어 채웠다고 말한 대목이다. 목회자의 청렴과 자비량 사역, 목회자 이중직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사도행전 20장 17-38절은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밀레도에 머물며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남긴 고별 설교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 동안 한 사역을 돌아보고(사도행전 20:31),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라고 당부한다(사도행전 20:28). 또 교회 안팎에서 잘못된 가르침이 일어날 것을 경고한다.
이 구절은 설교를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바울은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도 바라지 않았고, 자기와 동행들의 필요를 "이 손으로" 채웠다고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옷은 재산으로 여겨졌다. 이어지는 3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씀을 덧붙인다.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로 생계를 이었다는 기록은 사도행전 18:3에 있다. 개역한글의 "당하여"는 '감당하여', 곧 비용을 대어 채웠다는 뜻이다. 개역개정은 이를 "충당하여"로 옮겼다.
해석
- 지도자의 청렴과 본보기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말을 장로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읽는다. 교회를 맡은 사람은 재물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통한다고 보며, 디도서 1장 5-9절의 감독 자격과 함께 읽는다.
- 복음을 위해 권리를 내려놓았다는 읽기: 바울은 다른 곳에서 복음 전하는 사람이 생활을 지원받을 권리를 인정했다(고린도전서 9:14). 실제로 빌립보 교회의 후원도 받았다(빌립보서 4:15-16). 이 점을 근거로, 스스로 벌어 쓴 것은 모든 사역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라 복음에 걸림이 없게 하려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해석이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7-9절이 같은 맥락에서 인용된다.
- 노동과 나눔의 가르침으로 보는 읽기: 35절과 이어 읽으면 손으로 하는 노동은 자기 필요를 채우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약한 사람을 돕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28절과 함께 읽힌다.
- 역사적 배경에 주목하는 읽기: 일부 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당시 돈을 받고 가르치며 떠돌던 철학자나 교사들과 자신을 구별하려는 바울의 의도를 본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이 구절의 번역이나 사본을 둘러싼 논쟁은 거의 없다. 다만 오늘날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두고는 견해가 나뉜다.
- 목회자 이중직 논의: 교회 사례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목회자가 다른 일을 겸하는 것을 지지하는 쪽은 이 구절을 성경적 근거로 든다.
- 신중론: 바울도 교회의 후원을 받았고, 교회가 사역자를 부양하는 것이 일반 원칙이라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 교단별 차이: 한국 교단들은 이중직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거나, 미자립교회 목회자 등에게 조건부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단마다 입장이 다르다.
- 관련 논의: 목회자 사례비의 적정 수준을 논할 때도 이 구절이 함께 거론된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직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며 선교하는 방식을 바울의 천막 만들기에 빗대어 자비량 선교, 또는 '텐트메이커 선교'라고 부른다. 이 구절은 이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된다. 목회자와 직분자의 재정적 청렴을 강조하는 설교에서도 자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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