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누스
인물
발렌티누스(100년경~160년경)는 2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기독교 교사로, 초대교회 영지주의 가운데 가장 큰 흐름의 하나인 발렌티누스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생애
발렌티누스의 생애는 그를 비판한 교부(초대교회의 신학자·지도자)들의 기록으로만 전해진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바울의 제자 테우다스에게서 배웠다고 주장했다.
이레나이우스(이레네우스)에 따르면 그는 로마 감독 히기누스 때 로마에 와서 피우스 때 활발히 활동했고 아니케투스 때까지 머물렀다. 대략 130년대 후반부터 150년대까지 로마 교회 안에서 가르친 것으로 본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가 로마 감독이 되기를 바랐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교회를 떠났다고 적었다. 다만 이 기록은 그를 비판하는 쪽의 서술이다. 말년과 죽음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사역과 업적
발렌티누스는 영지주의(구원은 숨겨진 영적 지식, 곧 '그노시스'를 깨닫는 데 있다고 보는 사상)를 기독교 언어로 정교하게 체계화한 인물로 꼽힌다. 교부들이 전하는 발렌티누스파의 가르침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지극히 높은 하나님에게서 '아이온'이라 불리는 여러 영적 존재가 짝을 지어 나와 '충만'(플레로마)을 이룬다.
- 그 가운데 '지혜'(소피아)의 일탈로 물질세계와 그것을 만든 낮은 신, 곧 '데미우르고스'가 생겨났다.
- 사람은 영적인 사람, 혼적인 사람, 물질적인 사람으로 나뉜다.
- 그리스도는 영적인 사람들에게 참된 지식을 깨우쳐 주러 온 존재다.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 가운데 「진리의 복음」을 발렌티누스 본인이나 그 학파의 저작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제자로는 프톨레마이오스, 헤라클레온, 테오도토스, 마르쿠스 등이 알려져 있다. 헤라클레온은 요한복음에 관해 알려진 가장 이른 주석을 쓴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발렌티누스가 한국 교회에 직접 끼친 영향은 없다. 다만 신학교의 교회사·교리사 과목과 교회의 이단 교육에서 초대교회 영지주의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주 다뤄진다. 물질과 육체를 낮게 보는 가현설이나 마르키온주의와 함께, 정통 교리가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사례로 소개된다.
평가
이레나이우스는 「이단 논박」(180년경)에서 주로 발렌티누스파를 겨냥해 반박했다. 이후 테르툴리아누스 등 교부들도 그 가르침을 사도적 신앙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논쟁은 정경의 범위와 사도 전승,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는 고백을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발렌티누스파는 스스로를 교회 안의 더 깊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로 여겼고, 일반 신자의 신앙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보는 연구도 있다. 현대 학계에서는 나그함마디 문서 발견 이후, 비판자들의 기록과 그들 자신의 문헌을 함께 놓고 사상을 다시 살피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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