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9장 10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누가복음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여리고에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머문 뒤 자신이 온 목적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밝힌 말이다. 누가복음의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한 구절로 여겨져 전도와 선교의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누가복음 19:1-10의 삭개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구절이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다가, 뽕나무에 올라가 있던 세리장 삭개오를 불러 그의 집에 머문다. 사람들은 예수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린다. 이에 삭개오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한다. 예수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9절)이라고 답한 뒤, 이 구절로 자기 사명을 밝힌다. 예수는 자신을 인자라는 칭호로 가리키며, 이 말은 삭개오와 수군거리던 무리 모두에게 하는 말로 읽힌다.
"잃어버린 자"라는 표현은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에스겔 34장 11-16절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탕자의 비유와 같은 주제를 이어 간다. 원어 표현은 중성 단수형(잃어버린 '것')이어서, 특정 개인뿐 아니라 잃어버린 이들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도 이해된다.
해석
- 선교 요약으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구절을 누가복음 전체, 나아가 예수 사역의 목적을 요약한 문장으로 본다. 이 해석에서는 마태복음 20장 28절의 "인자가 온 것은…"과 같은 사명 선언과 나란히 읽는다.
- 하나님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읽기: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찾아"에 주목하여, 삭개오가 예수를 보려 했지만 먼저 이름을 부르고 다가간 쪽은 예수였다는 점을 들어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 보편적 부르심과 응답을 강조하는 읽기: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모든 사람을 향한 구원의 뜻으로 읽고, 앞서 다가오는 은혜(선행 은총)와 삭개오의 회개라는 인격적 응답이 함께 나타난 장면으로 설명한다.
- 공동체 회복으로 보는 읽기: 일부 학자와 사회적 관심이 큰 교회들은 세리로서 동족에게 배척받던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다시 불리고, 배상과 나눔을 통해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읽기에서 구원은 개인의 영혼 문제에 그치지 않고 관계와 삶 전체의 회복을 포함한다.
논쟁과 쟁점
- 삭개오의 말은 결심인가, 해명인가: 8절의 동사는 헬라어 현재형이다. 대부분의 번역과 해석은 이를 앞으로 하겠다는 결심, 곧 회심의 표현으로 읽는다. 반면 일부 학자는 이미 그렇게 해 왔다는 습관적 현재로 보고, 예수가 오해받던 삭개오의 정당함을 밝혀 준 이야기로 읽는다.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10절의 "잃어버린 자"가 도덕적으로 길을 잃은 죄인을 뜻하는지, 공동체에서 밀려난 사람을 뜻하는지에 대한 강조점이 달라진다.
- 마태복음 18:11과의 관계: 일부 사본의 마태복음 18:11에는 이 구절과 거의 같은 문장이 있다. 그러나 초기 주요 사본에는 이 문장이 없어, 필사 과정에서 누가복음 19:10에서 옮겨 온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 때문에 번역본에 따라 마태복음 18:11을 괄호로 표시하거나 각주로 돌린다.
- 문맥을 떠난 인용: 이 구절은 짧고 기억하기 쉬워 개인 전도 구호로 많이 쓰인다. 이를 두고, 원래 문맥에 있는 배상과 나눔, 공동체의 수군거림 같은 요소가 빠지기 쉽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삭개오 이야기와 함께 전도와 선교를 강조하는 설교 본문으로 널리 쓰인다. 전도 주일이나 총동원 주일 같은 전도 행사에서 자주 인용된다. 삭개오 이야기는 주일학교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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