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기사
성경 · 개념·용어 · 같은 말: 묵시록의 네 기사
네 기사는 요한계시록 6장에서 어린양이 일곱 인 가운데 처음 네 인을 뗄 때 차례로 나오는, 서로 다른 색의 말을 탄 네 존재다. 흔히 '묵시록의 네 기사'라고 부른다.
본문과 내용
요한계시록 6:1-8에 나온다. 어린양이 일곱 인 가운데 하나를 뗄 때마다 네 생물이 차례로 "오라" 하고 부르고, 그때마다 말 탄 자가 하나씩 나온다. 본문은 이들을 '기사'라고 부르지 않고 "탄 자"라고 적는다.
- 흰 말: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나간다(6:2).
- 붉은 말: 땅에서 화평을 없애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며, 큰 칼을 받았다(6:4).
- 검은 말: 탄 자가 저울을 들었다. 이때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는 소리가 들린다(6:6).
- 청황색 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고 음부가 그 뒤를 따른다. 이들은 땅 사분의 일에 대한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사람을 죽인다(6:8).
배경
말의 색깔은 스가랴 1장과 6장에 나오는 여러 색 말의 환상과 닮았다. 넷째 기사가 가져오는 재앙은 에스겔 14:21의 네 가지 심판, 곧 칼·기근·사나운 짐승·전염병과 겹친다.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다(마태복음 20:2). 그래서 셋째 기사 본문은 하루 벌이로 겨우 한 사람의 곡식을 살 만큼 물가가 치솟은 기근으로 흔히 풀이된다. 넷째 말의 색을 가리키는 헬라어 '클로로스'는 본래 연두색이나 창백한 빛을 뜻하며, 시체의 낯빛을 떠올리게 하는 말로 이해된다.
첫째 기사의 활을 두고 당시 로마의 동쪽 경계를 위협하던 파르티아의 기마 궁수를 떠올린 표현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전쟁·기근·죽음이 잇따르는 흐름은 예수가 종말의 징조로 말한 전쟁과 기근(마태복음 24:6-8)과 나란히 놓고 읽힌다. 네 기사 모두 권세를 "받았다"고 표현된다. 이 때문에 재앙조차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해석과 논점
가장 크게 갈리는 부분은 흰 말 탄 자의 정체다.
- 요한계시록 19:11의 흰 말 탄 그리스도와 연결해 그리스도나 복음의 승리로 보는 해석이 있다.
-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적그리스도로 보는 해석이 있다.
- 나머지 세 기사와 같은 맥락에서 정복 전쟁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읽는 방식에 따라 네 기사의 의미도 달라진다.
- 1세기 로마 제국의 사건으로 보는 과거적 해석
- 교회사의 흐름에 대응시키는 역사적 해석
-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로 보는 미래적 해석
- 역사 전반에 되풀이되는 원리로 보는 상징적(이상적) 해석
세대주의 쪽에서는 대체로 미래적 해석을 따라, 대환난 기간의 사건으로 보고 첫째 기사를 적그리스도로 읽는 경우가 많다.
대중문화에서는 네 기사를 흔히 '전쟁·기근·역병·죽음'으로 부른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름이 밝혀진 것은 넷째 기사의 '사망'뿐이다. 첫째 기사를 '역병'으로 부르는 것도 본문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1498년 무렵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목판화가 이 장면의 대표적인 미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
네 기사는 요한계시록 강해와 종말론 설교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해석은 위에 적은 관점에 따라 교단과 설교자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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